인천국제공항에서 도로 청소 일을 하는 윤모(45)씨는 지난해 9월 청소 중 비가 많이 와 미끄러지면서 청소차 모서리에 머리를 찧었다. 얼굴로 피가 흘러내려 혼자 움직일 수 없었던 윤씨는 인천공항공사와 용역계약을 맺은 자신의 회사(하청업체)에 차를 보내달라고 했지만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회사는 "바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40여분간 차를 기다리던 윤씨는 결국 혼자 화장실에 가서 지혈을 하고 한 손으로 운전을 해 회사로 갔다. 이후 병원 치료비도 윤씨가 건강보험으로 해결한 후 나중에 회사로부터 지급받았다. 하청업체가 공항공사와 재계약이 안 될까 우려해 사고를 숨긴 탓이다. 윤씨는 "회사는 말로만 '안전 안전'할 뿐, 공항공사 눈치를 보느라 산재 처리도 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이 세계 최초로 국제공항협의회의 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7년 연속 1위를 달성하며 '세계 1위'의 명성을 날리고 있지만, 정작 이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은 심각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인천대 노동과학연구소에 의뢰해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간 인천공항의 간접고용(비정규직) 노동자 836명의 건강 상태와 작업 환경을 조사해 14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2.8%가 신체부위 한 곳 이상에서 근골격계 질환 증상을 호소했다. 이 때문에 미국안전환경보건연구원(NIOSH) 기준으로 관리가 필요한 노동자도 74.4%에 달했다. 노동자 10명 중 7명이 통증으로 병원이나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고, 소음을 심각하게 느끼는 노동자도 40.5%나 됐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시설 보안 환경 등 운영업무를 하는 직원은 약 7,000명으로, 이 중 정규직은 895명(2011년 말 기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하청업체는 건강문제뿐 아니라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까지도 쉬쉬하며 덮기에 바쁘다. 공항공사가 하청업체와 서비스수준협약(SLA)을 맺어 4주 이상 요양하는 산재 노동자가 발생하면 낮은 평가점수를 주기 때문이다. 평가가 나쁜 하청업체는 재계약이 힘들어지고 하도급대금도 계약대로 받지 못해 결국 사고를 은폐하곤 한다. 민길숙 공공운수노조 미조직비정규국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제때 치료도 받지 못하고 산재 대신 사업주가 임의로 치료비를 지급하는 공상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신종플루나 조류인플루엔자(AI) 같은 전염성 질병이 돌 때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설비 업무를 담당하는 한 노동자는 며칠 늦게 예방 주사를 맞으러 갔지만 약이 다 떨어졌다고 해 아예 주사를 맞지 못했고, 청소를 담당하는 한 노동자는 1주일 동안 1회용 마스크를 하나밖에 지급받지 못했다.
김철홍 인천대 노동과학연구소장은 "인천공항이 연간 6,0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면서도 노동자의 90%를 비정규직으로 사용하면서 이 같은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며 "정규직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법적 의무인 노동자 작업환경과 근골격계 질환 조사를 공항 개항 후 한 번도 하지 않은 정부도 이를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