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 채 가시지 않은 오래된 역사도시에서 보전이냐 개발이냐는 늘 딜레마다. 보전만 앞세우면 죽은 도시가 될 수 있고, 개발에 치중하면 자칫 역사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학자 에일린 올바슬리가 쓴 <역사도시 투어리즘> (눌와 발행)은 이 난제를 풀 실마리를 제공한다. 역사적 경관과 문화유산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함으로써 보전과 개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선진국과 저개발국 여러 역사도시의 경험을 분석해 나아갈 방향을 짚었다. 2000년 런던과 파리에서 출간 이래 필수문헌으로 자리잡은 이 책을 문화재청 직원들의 독서모임 '책술'이 번역했다. 회원 중 5명이 바쁜 일과를 쪼개 1년 반 동안 주 2, 3회 아침 7시 반에 모여 공부해서 낸 책이다. 그 전에 6개월간 각자 초역을 마쳤다. 역사도시>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사례와 제안은 한국 상황에 참고할 만한 좋은 자료이기도 하다. 서울, 경주, 부여 등 한국의 역사도시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경주 양동마을과 안동 하회마을 등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번역자 중 강경환 문화재정책국장에게 각별하게 다가온 이슈는 '지속가능성'과 '주민 참여'다. 그는 "고도 등 역사도시가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시설 투자에만 치중하고 주민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결국 역사성을 훼손하고 주민을 유리시키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관광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도시(주민)를 위한 관광이라야 지속가능성이 있다는 이 책의 주장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관광은 역사도시를 살리기도 하지만 망치기도 한다. 이 책은 실패 사례도 소개한다. 역사도시 보전 과정에서 관광의 역할과 이를 위한 의사 결정 구조, 바람직한 보전을 위한 관광계획과 방문객 관리 방법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저자는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바이신 지구, 영국 요크, 몰타 음디나, 터키 안탈리아, 독일 크베들린부르크의 사례 연구를 통해 섬세하고 신중한 접근, 지역 공동체의 참여,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을 강조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지역공동체와 시민단체가 각각 할 일과 협력 방안에 대한 분석과 제안도 매우 요긴하다.
크베들린부르크는 구동독 중세도시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2003년 한 달간 거기에 살아본 여희경 발굴제도과 주무관은 "가난하지만 자부심이 강한 이 도시는 관광을 통한 도시 재생의 전략으로 개발보다 보전을 택했다"며 "한반도 통일 이후 개성 등 북한의 역사도시 경영에 참고할 만한 사례"라고 말했다.
문화유산 보전을 위한 규제는 종종 지역 발전의 걸림돌로 원성을 산다. 안호 보존정책과 주무관은 "산 사람이 먼저이지 죽은 문화재가 무슨 대수냐는 말을 들을 때 제일 괴롭더라"며 "주민에 대한 배려나 보상도 중요하지만, 미래 세대를 위해 불편을 감내하겠다는 의식이 아쉽다"고 말했다.
대전=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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