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형사재판소(ICC)가 14일 창립 이래 처음으로 콩고민주공화국 반군지도자 토머스 루방가(51)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이날 재판을 주재한 에이드리언 풀퍼드 판사는 "검찰이 루방가가 2002, 2003년 콩고에서 벌어진 내전에 15세 이하 소년병들을 동원한 사실을 입증했다"고 밝혔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번 판결은 2002년 7월 ICC가 설립된 이후 첫 번째 판결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ICC는 루방가 외에 우간다 내전에서 소년들을 징집하고 부모를 죽이도록 강요한 조지프 코니와 수단 내전에서 양민을 학살한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 등 20명과 관련한 사건을 처리 중이지만 판결을 내린 적은 없다. 국가간 분쟁만 담당하는 국제사법재판소(ICJㆍ유엔산하기구)와 달리 ICC는 집단학살 등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단죄하는 세계 유일의 상설 형사법원이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대규모 학살을 저지르고도 태연하게 면죄를 받던 중동지역 독재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특히 루방가 공판은 현재 ICC에 기소된 사건 중 소년병 동원 혐의에 초점을 맞춘 첫 사례이므로 향후 소년병을 전쟁에 투입한 범죄자들의 재판에서 중요한 판례로 참고될 공산이 크다.
미국 클리블랜드대의 마이클 샤프 교수는 "이번 유죄 판결로 15세 미만 미성년자를 전쟁에 동원하는 것이 심각한 범죄라는 사실을 전세계에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콩고 동부 이투리주에서 소수민족인 헤마족을 중심으로 콩고애국자동맹(UPC)을 결성한 루방가는 당시 어린 소년과 소녀들을 납치해 전장에 투입, 상대 종족을 살해하도록 명령한 혐의로 2006년 기소됐다. 2009년 1월 네덜란드 헤이그의 본부에서 열린 ICC 사상 첫 공판에서 검찰은 루방가를 "한 세대를 파괴한 극악무도한 범죄자"라고 비난하며 법정 최고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루방가는 혐의를 부인해왔다. 그는 UPC를 설립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자신에게는 통수권이 없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검찰 측은 이에 맞서 루방가가 소년들 앞에서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연설을 하고 훈련캠프에 나타난 영상물을 증거자료로 제출해 유죄 선고를 이끌어냈다. 형량 선고 공판은 추후 열릴 예정인데 혐의가 모두 인정될 경우 루방가는 최대 종신형에 처해질 수 있다. ICC는 사형은 집행하지 않는다.
인권단체들은 이날 ICC 판결에 환영했다. 국제인권수호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 관계자는 루방가 유죄 판결에 대해 "그와 같은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매우 강력한 경고 메시지가 될 것"이라며 "(전범자들에게) 더 이상의 면죄부는 없다는 사실을 알렸다"고 기뻐했다.
공판에 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한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도 "군인으로 징집됐던 소년들의 승리"라며 환영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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