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하나가 첫 월급을 탔다며 휴대폰을 사가지고 왔다. 월급의 3분의 2는 될 값비싼 최신형 기종, 고민 끝에 이걸 덥석 받아 든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재능을 겸비하고 있는지 모른 채로 그저 제가 판 연못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녀석에게 뜰채를 내민 게 나였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그래서 생긴 새 물건은 반갑고 고맙고 기뻤다만 손때 묻은 내 구식 휴대폰이 하루아침에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으니 이를 어쩌나. 쌍권총도 아니면서 양 호주머니 속에 각기 다른 두 개의 휴대폰을 넣고 다니기를 한 달, 하루는 그 둘에게서 동시에 벨이 울린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주변의 반응은 이랬다. "야, 네가 무슨 연예인이냐? 어서 하나 정리를 해, 정리." 아, 그래 그 정리란 걸 하기 위해 나도 틈날 때마다 구식 전화기의 전화번호부를 열고 있다고요! 가나다순으로 저장되어 있는 사람들 가운데 제법 친하다고 자신하는 이들 몇을 신식 전화기에 옮기고 나니 글쎄, 이런 가늠과 고심 속에 빠지게도 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나랑 친하다고 생각할까? 몇 번 통화한 사이도 아닌데 저장하는 오버는 욕심 아닐까? 이름을 쭉 훑어나가는데 그새 운명을 달리한 사람들도 꽤 읽혔다.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을 지울 수 없어 에라 모르겠다, 고스란히 옮기고 보니 어머 여기 마라도 자장면 가게 번호도 있네. 하여튼 이 오지랖아!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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