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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은행, 영웅시대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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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은행, 영웅시대 그 이후

입력
2012.03.1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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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은행의 역사는 1998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IMF체제 한복판에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은행은 모든 게 달라졌다.

그 이전까지 은행권은 '조ㆍ상ㆍ제ㆍ한ㆍ서ㆍ외'의 시대였다.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 외환 등 6개 대형 은행들. 하지만 다른 건 이름만 뿐이었다. 규제금리였기 때문에 이자율이 같았고 가격이 똑같으니 경쟁이란 존재하지 없었다. 자산과 부실까지 비슷비슷했다.

은행장들도 마찬가지였다. 100% 청와대가 낙점했다. TK정부 하에선 TK행장이, PK정권 때는 PK행장이 득세했다. 권력과 함께 부침하는데 스타행장, 장수행장이 나올 리 만무했다.

금융기관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정부산하 예금ㆍ대출취급소에 가까웠던 은행을 확 바꿔 놓은 건 IMF체제였다. 퇴출과 합병, 공적자금 등 부실을 솎아내는 강제 구조조정의 결과, 오랜 '조상제한서외'는 붕괴됐고 그 자리를 '국신우하'가 메웠다. 주택은행과 합친 국민은행, 조흥은행을 삼킨 신한은행, 상업+한일의 우리은행, 서울은행을 흡수한 하나은행, 이렇게 신4강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4대 은행은 이후 그룹 체제(지주회사)를 구축, 본격적인 규모의 싸움에 들어갔다.

권력의 생리는 여전했다. 정권실세들은 틈만 나면 은행장 인사에 개입했다. 특히 현 정부에선 '금융자율의 시계가 거꾸로 돈다'는 말이 나올 만큼 MB측근들의 진출이 노골화됐다.

그래도 정부 입김이 먹히지 않은 은행이 있다는 건 큰 변화였다. 정확히 말하면 이 은행들에는 낙하산 시도 자체가 없었다. 정권이 특별히 자제해서가 아니라,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개입할 수 없는 곳'이란 인식이 생겨난 결과였다. 바로 신한과 하나였다.

신한과 하나는 확실히 독특했다. 다른 은행에는 결코 없는, 신한과 하나만이 가진 특별한 한가지, 그건 '빅 CEO'였다, 라응찬 전 신한금융회장과 김승유 하나금융회장. 두 은행이 관치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건 이 두 사람 때문이었다.

라응찬 전 회장은 지난 해 물러나기까지 은행장과 지주회장에 총 20년간 재임했다. 이번 주총에서 퇴임하는 김승유 하나금융회장도 재임기간이 15년에 이른다. 전례 없는 장수CEO들이다.

두 사람은 사실 CEO이기에 앞서 창업자들이다. 직접 은행을 설립했고, 짧은 기간 동안 비약적으로 키워냈다. 정치권력조차 두 은행을 넘보지 못한 건 이 때문이다. 아무리 탐욕스런 권력이라도, 압도적 성과와 절대적 리더십을 가진 창업자를 쫓아낼 수는 없다. 일각에선 '라응찬은 TK이고 김승유는 MB친구이니까'라고 평하지만, 두 사람은 DJ정부와 참여정부 때도 건재했다.

둘을 비교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오직 퇴임에 대한 판단만 달랐을 뿐이다. 라응찬 전 회장은 물러나야 할 때를 놓치는 바람에 반세기 뱅커 인생을 허망하게 마감했고, 반면 김승유 회장은 물러날 때를 오히려 조금 앞당김으로써 명예졸업을 하게 됐다.

우리나라 은행권은 이제 또 한 시대를 마감하게 됐다. '영웅시대의 종말'이라고나 할 까. 아마도 이런 장수CEO, 스타CEO는 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금융위기가 와서 금융권이 또다시 뒤집어지지 않는 한, 은행은 앞으로 관리형 CEO가 대세가 될 것이다.

긴장은 지금부터다. 정치는 버팀목이 사라진 두 은행을 호시탐탐 노릴 것이다. 빈 틈이 보이는 순간 권력의 탐욕과 개입 본능은 살아날 것이다. 과연 3년, 5년 후 신한과 하나는 어떤 모습일까. 한동우 신한회장과 김정태 하나회장(내정자)의 어깨가 무거워 보이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이성철 산업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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