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한다. 아주 오래된 진담이다. 나라를 구하는 사람도, 망치는 사람도 정치가다. 누구나 정치를 꿈꿀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정치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가가 되는 왕도(王道)도 정도(正道)도 없다. 정치로 성공하는 사람도 매우 드물다. 널리 존경 받던 사람도 쉽게 망가지는 곳, 그게 정치의 세계다.
오래도록 야박하리만치 거절과 사양을 거듭하던 문재인이 마침내 정치일선에 나섰다. '참다 참다 못해' 결심했다고 한다. 이를 일러 스스로 '운명'이라 불렀다. 그가 전면에 등장하자 나라의 정치기상도가 달라졌다. 즉시 대통령후보로 떠올랐다. 오랜기간 용꿈을 키우고 다져왔던 정치꾼들에게는 당혹스런 일이다. 기존의 '대권구도'를 휘저은 문재인의 앞길은 험난하다. 기대를 거는 국민 못지않게 경쟁자와 적도 많다.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나이 든 사내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옛말이 있다. 사람의 얼굴은 이력서라고 한다. 문재인이 가꾸어 온 형용자태는 정치가의 그것이 아니다. 지나치게 맑고 참신하다. 여태껏 보여준 그의 언행도 마찬가지다. 바로 그게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은다. 문재인, 신뢰가 가는 인격자이지만 정치적 역량은 미지수라고. 그렇다. 이제부터는 정치가의 면모를 보여 주어야 한다. 책략과 술수, 구태의연하다고 여길지도 모르는 정치가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내키지 않아도 배우고 익히고 때때로 써야만 한다.
정치가라면 최소한 두 가지 능력을 키워야만 한다. 첫째, 필요하면 상대방을 먼저 공격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란 수동적인 방어만으로는 승리하기 힘들다. 때때로 가당치도 않는 '네거티브 캠페인', '노이즈 마케팅'이 먹혀들어가는 게 정치다. 대중은 결코 이성적이지 않다. 특히 선거는 가장 비이성적인 정치의식이다. 둘째, '말'로 점수를 얻어야만 한다. 침묵으로 얻은 점수는 정치인의 점수가 아니다. 여태껏 문재인은 말을 아낌으로서 점수를 얻었다. 이제부터는 적극적, 능동적으로 말을 함으로써 점수를 올려야 한다. 정치는 말의 향연이다. 국민의 바램을, 나라의 장래를, 자신의 포부를, 정당의 정책을, 말로 전달해야 한다. 맞장토론, 적대적인 설전에서는 상대를 제압해야 한다. 결코 양보가 미덕이 아니다. 새누리당은 문재인의 상대로 27세의 어린 여성을 공천했다. 뛰어난 정치적 전략이다. 여고학생회장 경력이 전부다. 문재인에게는 큰 부담이다. 설마 그럴 리야 없다지만 행여 진다면 그의 정치는 끝장이다. 입문도 못하고 판을 거두어야 한다. 이겨도 그리 빛나지 않는다. 압도적으로 이겨야 한다. 홀로 승리해서도 힘을 쓰기 어렵다. '낙동강 벨트'가 웬만큼 팽팽해지도록 함께 이겨야 한다. 행여나 어린 여성을 상대로 가혹하게 할 수 없다, 온정적 가부장 의식이라도 보인다면 정치가의 자격이 없다. 민주 선거에 남녀노소, 상하가 어디 있나. 모두가 평등, 대등한 후보이지. 선거는 평화시의 전쟁이다. 전쟁은 무조건 이겨야만 한다. 상대후보 뒤에는 박근혜가 버티고 있다. 자신을 정치판으로 내몬 집진이 도사리고 있다. 노무현을 죽음으로 내몬 그 세력들이 진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에게는 보다 큰 적이 있다. 손수조, 박근혜, 보수세력보다도 더 무서운 적이다. 바로 문재인 자신이다. 정치가 문재인이 성공하려면 인격자 문재인을 먼저 제압해야 한다. 국민은 인격자가 아니라 정치지도자 문재인을 보고 싶다. 정치지도자는 망가지면서 크는 법이다. 그 판에 나선 이상 망가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문재인이 상경하여 잘못된 당의 인선을 바로 잡았다. 당대표를 실제로 울렸다는 보도도 있다. 이제야 정치에 입문한 신고식을 치른 셈이다. 그렇게, 그렇게 정치력을 키워가야 한다. 인격, 인간미는 나중에 보여줘도 된다. 평생 가꾸어온 고귀한 성품이야 어디 달아나겠는가.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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