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박사들의 천국'이다. 어느 조직에서나 박사 학위 소지자가 다소 우대를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은은 그 이상이다. 박사가 아니면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 박사만이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자리까지 생겼다.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단행한 인사로 주요 보직에 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대거 포진했다.
우선 새로 내정된 부총재보(임원급) 4자리 중 3자리가 해외 박사 학위 소지자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인 김준일 부총재보(이하 내정자)는 미 브라운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강태수 부총재보와 김종화 부총재보는 각각 미 미주리대와 미시간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 이에 따라 부총재보 5자리는 박사 3명, 석사 2명으로 채워지게 됐다. 현재 박사 1명, 석사 2명, 학사 2명인 것을 감안하면 '가방끈'이 엄청 길어진 것이다.
주요 국장 자리도 마찬가지다. 통화정책국ㆍ조사국ㆍ국제국ㆍ거시건전성분석국ㆍ금융시장부 등 핵심 보직 5자리 중 통화정책국장 한 자리를 제외하고는 4자리 모두 박사 학위 소지자다. 4명 모두 미국 명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이전에는 박사 학위 소지자가 2명에 불과했다.
팀장급 역시 박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이들 5개 부서 및 경제연구원의 팀장급 이상 인력은 총 55명. 이중 박사가 27명으로 50%에 달한다. 경제연구원은 전원(7명)이 박사이고, 조사국(58%)과 거시건전성분석국(55%)도 박사 학위 소지자가 절반을 넘는다. 인사 이전 박사 비중(39%)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차이가 난다.
이처럼 박사 학위 소지자가 우대되는 것은 김중수 총재의 의중이 100% 반영된 결과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김 총재는 공개적으로 박사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왔다. 그는 지난달 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 회의 차 방문한 멕시코시티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외국 중앙은행에선 연구나 분석을 맡고 있는 자리에는 다 박사급을 앉힌다"며 "중앙은행은 단순 조사 차원이 아닌 연구가 중요하기 때문이며 아카데미보다 더 아카데믹한 것이 중앙은행"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인사 전에 조사국장, 국제국장, 거시건전성분석국장 자리에는 무조건 박사 학위 소지자가 임명돼야 한다고 아예 못을 박은 것으로 전해진다.
박사 학위가 없는 직원들의 소외감은 상당하다. 석사 학위 소지자인 한 중간 간부는 "업무 능력이 아니라 박사 학위를 보유하고 있는지 여부로 평가를 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아무리 연구 분야라고 해도 학위 못지 않게 경험이 중요한 법 아니냐"고 항변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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