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경찰관이 자신이 맡았던 수사를 지휘한 검사를 직권남용과 협박 등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두고 검찰과 경찰이 충돌하고 있다. 검찰은 공식 보도자료를 내고 '경찰의 과잉 표적수사였다'고 비판했다. 경찰은 곧바로 브리핑을 갖고 '정당한 수사에 대한 검찰의 물타기'라고 맞받아쳤다.
검경의 충돌은 경남 밀양경찰서 정모(30) 경위가 대구지검 서부지청 박모(38) 검사를 지난 8일 모욕, 협박, 직권남용, 강요 혐의로 경찰청에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정 경위는 박 검사가 창원지검 밀양지청 근무 당시 지역 폐기물처리업체의 폐기물 무단매립 사건과 관련해 수사 축소를 종용하고 모욕적인 언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청은 이 사건을 이튿날 지능범죄수사과에 배당해 수사에 착수했고, 창원지검 이준명 차장검사는 12일 기자회견을 갖고 "경찰청이 일방적 주장에 근거해 이례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검찰의 부당한 수사지휘 있었나
정 경위는 지난해 9월 폐기물처리업체 대표를 구속한 뒤 업체 간부와 지역신문 기자 간 금품수수 의혹, 업체 간부의 공금유용 혐의 등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하자 "박 검사가 업체에 대한 수사를 더 이상 확대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해당 업체 대표는 밀양지역 토호로 밀양지청 검사 출신을 변호인으로 선임했다"며 "이런 정황이 박 검사의 수사지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수사하겠다"고 별렀다.
그러나 이준명 차장검사는 "지난 주말 해당 수사기록을 밀양지청에서 넘겨받아 정 경위가 주장하는 의혹에 대해 박 검사,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검찰 수사관과 여직원 등을 상대로 서면 또는 전화로 확인했다"며 "검사가 수사를 축소토록 지시하거나 종용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반박했다.
경찰이 무리하게 수사했나
창원지검은 정 경위의 과잉수사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경찰에서 입건한 지역신문 기자 등은 불법이라고 단정할 만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아 혐의없음 처분을 했는데도 경찰이 7개월째 수사를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또한 정 경위가 비상장주식 거래 사이트에 해당 업체와 관련해 경찰에서 수사 중이니 제보해 달라는 글을 올린 것도 과도한 수사라고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해당 업체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본 투자자의 진술을 확보하기 위한 정당한 수사였다"며 "사건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7개월이라는 수사기간도 전혀 길지 않다"고 맞받아쳤다.
검사가 폭언ㆍ협박했나
이 부분에서도 검경의 주장은 첨예하게 엇갈린다. 정 경위는 1월20일 검사실에서 박 검사로부터 "야, 뭐 이런 건방진 놈이 있어" 등의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창원지검은 박 검사가 "수사 방법에 문제가 있고 정도에 의한 수사가 아니니 신중을 기하라고 질책하는 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진 것일 뿐 폭언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여파인가
이번 검경의 충돌은 지난해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검경 갈등 앙금이 남았기 때문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박 검사가 최근 경찰 출신 이인기 의원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내사하자 경찰이 박 검사를 '기획고소'한 것이라는 일각의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준명 차장검사는 "검사 수사지휘에 대한 재지휘권이 보장돼 있는데도 이를 행사하지 않고 고소장을 제출한 것은 정당한 수사지휘 자체를 거부하려는 의사를 표출한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현직 경찰관 신분인 고소인이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해당 검사를 관할 검찰청이나 경찰청이 아닌 서울에 있는 경찰청에 고소장을 낸 경위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순수한 의도의 고소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헌기 경찰청 지능범죄수사과장은 이에 대해 "경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개별 고소사건에 대해 피고소인의 소속 기관이 조직 차원에서 입장을 밝힌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고 성숙하지 못한 자세"라며 "무엇보다 사실관계에 대한 명확한 규명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창원=이동렬기자 dylee@hk.co.kr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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