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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재벌가, '가족의 덫'에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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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재벌가, '가족의 덫'에서 벗어나라

입력
2012.03.1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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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사는 인생, 천년동안 근심만할 건가?'

재벌가 3세 A씨가 카카오톡에 자신의 문패로 걸어놓은 말이다. 재기 넘치고 품성도 넉넉한 40대의 그를 주변인들은 안타까워 한다. A씨는 부친을 일찍 여의였다. 조부는 유산을 물려주지 않은 채 세상을 등졌다. 그래서 A씨는 사촌ㆍ6촌 형제들과 달리 물려받은 재산이 없다. 그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이 적지 않다. 현재 백부의 배려로 작은 기업의 대표를 맡고 있지만 회사 지분은 전혀 없다. 가업과 동생들을 생각하면 선친 몫의 유산을 꼭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큰 기업을 하는 백부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백부가 조카까지 챙겨줄지 의문이다. 그의 뛰어난 리더십과 친화력을 보면 범부(凡夫)로 태어나 적성과 소질대로 기업을 했어도 성공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재벌 총수 B씨. 보유한 주식 가치가 3조원이 넘는 그가 왜 거액의 돈을 빼돌려 자본시장에 투자했다가 재판까지 받는 신세가 됐을까. 선친이 유산 상속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사망하고, 그 과정에서 사촌 형제들의 도움과 지지로 그룹 소유ㆍ경영권을 넘겨받은 만큼 그들에게 갚아야 할 심적 부채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기존 지분을 유지하면서 계열사 등을 쪼개 그들을 챙겨주려는 과정에 막대한 개인 현금이 필요하게 돼 무리수를 뒀다는 것이다.

요즘 재계 안팎의 최대 화두 중 하나가 부의 상속(증여)과 기업 승계 문제다. 삼성가(家)의 유산 분쟁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재벌가가 최소 50년 역사를 넘기며 3대 경영 시대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 현대차 한화 한진 효성 등 대부분의 기업들은 여론의 동향을 살피며 3세 승계 문제를 물밑에서 착착 준비 중이다. 현 정부 출범 후 많은 재벌들이 계열사를 크게 늘린 것은 신성장 동력 발굴의 목적도 있지만, 자식들에게 기업을 떼주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중론이다. 재계의 한 인사는 "주는 사람은 물론 잘 받거나 못 받거나 덜 받은 사람 모두가 재산 상속을 둘러싼 덫에 걸려 있다"며 "특히 재벌 오너가가 3, 4세로 내려오면서 챙겨야 할 식솔들이 증가한 것이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족의 덫' 때문에 계열사를 계속 늘리고 일감을 특정 계열사에 몰아주고,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무릅쓰는 편법과 탈법, 무리수가 잇따른다는 설명이다.

이런 탓인지 재벌들은 기업 승계 문제만 나오면 몸을 사린다. 기업의 상속은 당사자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오직 부모 잘 만난 덕분에 누리게 되는 부의 대물림이라는 비판적 여론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수 많은 사람들의 밥줄을 쥐고 있는 재벌 오너들이 자식들에게 쌈짓돈 쥐어 주듯 기업을 넘기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이냐는 주장도 기업에는 큰 부담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속 자체를 죄악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탈세 등은 엄히 다스려야겠지만 기업의 혈연 승계 또는 비혈연 승계 그 자체를 선과 악으로 재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기업은 성과에 따라, 사회공헌도에 따라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재벌들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절대적 영향력을 감안할 때 이들의 몰염치한 행태를 마냥 뒷짐진 채 바라만 볼 순 없는 노릇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 팽배한 정서다.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는 요즘 상황에선 더더욱 그렇다. 재벌들이 창업기와 수성기를 거쳐 새로운 중흥의 길에서 국가발전을 이끌려면 역량 있고 검증된 후계자만을 경영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거나, 친자식이나 피붙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챙겨주려는 오너들의 의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재벌가 오너들은 곱씹어 봐야 한다. 한국 사회는 더 이상 재벌의 구시대적 관행이나 행태에 너그럽지 않다. 재벌 오너들은 지금과 같은 재벌 체제가 30년 뒤에도 계속 살아남을 지 깊게 고민해봐야 한다. 그 출발은 오너들의 의식과 행동이 '가족의 덫'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박진용 산업부 차장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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