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광주의 중학생이 자살을 했다. 심한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내린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이로 인해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대책방안이 시급해졌다. 학교가 위기에 처한 것이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스쿨폴리스제도, 가해자학생 엄중 처벌 등 많은 대책들을 제시했지만 미봉책일 뿐 근본적인 해결방안이라 보기는 어렵다. 언제는 고양이가 없어서 쥐를 못 잡았으며 지금껏 처벌이 너무 가벼워 학교폭력이 빈번했는가? 아직 한참을 잘못 짚었다. 그렇다면 학교를 위기에서 구해낼 방법은 없는 것일까?
나는 학교를 둘러싼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가정, 학교, 사회의 측면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가정으로의 회귀이다. 가정은 사회의 기본바탕이자 우리의 안식처이다. 하지만 현대인은 자본주의, 개인주의에 빠져 서로에게 무관심하며 각자 자기 일하기에 바쁘다. 가정이라 하여 무엇이 다르겠는가? 맞벌이가 늘고 학생은 학교, 학원을 쉴 틈 없이 오가는 현실에서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기란 쉽지 않을 뿐더러 집에서도 각자 자기 방문을 굳게 닫고 자기 일에 매달리는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피해자 학생은 자신이 혼자라고 느끼기 마련이다. 힘들다 한들 누구에게 말할 수 있겠는가? 부모님은 내가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으리라 생각하실텐데. 가해자 학생의 가정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부족한 대화와 무관심 속에서 학생은 자기 과시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나는 가정 내 대화와 관심, 소통이 학교폭력예방의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이라도 부모님, 혹은 학생이 먼저 학교에서 힘든 점은 없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하는 시간을 갖는 게 어떨까?
둘째, 교육 환경의 개선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정해진 길을 벗어난 학생을 문제아로 낙인 시켜 버린다. 학교폭력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만 급급할 게 아니라 잠정적 가해자의 방치를 막아야 한다. 정부의 대안 중 가장 어처구니가 없던 것은 문제아 학생을 격리하도록 요구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학교가 학생을 놓아버릴 수 있는가? 소위 '일진' 학생들은 공부하기 싫고 자유롭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다. 이들을 다시 이끌기는커녕 옥죄기만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교육이다. 일진학생들도 공부하고 싶게 해주면 된다. 아니, 공부가 아니어도 재능을 찾아 새로운 길을 만들어주면 된다. 자기과시에 빠지지 않도록 교육적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담임선생님과의 주기적인 상담시간 편성으로 피해자, 가해자학생을 미리 예방하고 방과 후, 특기적성 활동을 통해 다양한 재능을 찾을 수 있도록 하여 단 한 명의 인재도 놓치지 않게 꽉 잡아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 스스로 공부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대다수의 학생이 자신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주관적인 이유도 모른 채 입시를 위한 교육에 맡겨지니 인성이 자리 잡을 틈이 없다. 일방적인 정보전달식의 교육이 아니라 학생이 원하는 바를 알고 선생님과 학생과 소통하는 참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셋째,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관심이다. 지금까지 학교폭력이 없어서 심각성이 대두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분명 지금껏 더하면 더했지 덜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모두 가벼이 여겨왔으며 피해자 학생이 분명히 대처하지 못했다거나 가해자 학생이 나빠서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학교폭력은 단순히 학교 내에서만 끝날 일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학교는 단순한 배움의 장이 아닌 가정을 벗어난 첫 인간관계 형성의 장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학생들이 사회에서 얼마나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사회의 학교폭력에 대한 심각성 인식과 지속적인 관심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는 대표적으로 이 세 가지 측면에서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물론 이것만으로 학교폭력을 완전히 근절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천천히 하나씩 엉킨 실타래를 풀어간다면 언젠가 모든 학생이 웃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청소년은 나라의 희망이라 하였다. 나라의 희망이 꺾이지 않도록 우리 모두의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전남 창평고 2학년 황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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