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역을 휩쓴 민주화 운동, 세계 자본주의 심장부인 월가에서 일어난 점령 시위 등으로 도래한 격변의 시대. 자본주의와 대의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위기는 그 전모를 파악하거나 향방을 예측하기 힘든 혼돈 그 자체다.
한국일보와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과 교수가 공동 기획해 지난달부터 매주 수요일 연재 중인 '위기의 시대, 지성과의 대화' 시리즈는 세계적 사상가들의 생생한 육성으로 이같은 총체적 변화의 양상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지금까지 5회에 걸쳐 슬라보예 지젝, 자크 랑시에르, 가라타니 고진, 지그문트 바우만, 악셀 호네트 등 명실상부한 사상계 거장들과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이번 주부터는 영국 철학자 사이먼 크리츨리(14일자)를 시작으로, 알베르토 토스카노(영국), 크리스토프 멘케(독일), 브루노 보스틸스(미국), 그렉 렘버트(영국) 등 촉망 받는 신진 학자들의 인터뷰를 싣는다. 이 교수는 "40, 50대 젊은 학자들로, 한국에는 덜 알려져 있지만 저마다 현실 문제와 접목된 독창적 사유로 차세대 대가로 꼽힌다"고 소개했다. 이어 "탈식민 이론의 권위자 가야트리 스피박, 생명윤리학 분야의 대표 학자 겸 활동가 피터 싱어 등 스타급 석학과의 인터뷰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자음과모음 출판사가 후원하는 이번 시리즈의 기획 의도와 의미, 향후 진행 방향을 이 교수와 함께 점검했다.
_이번 시리즈가 기존의 세계 석학 릴레이 인터뷰와 다른 점은.
"그간의 인터뷰 기획은 '사상 지형도'를 그린다는 명목 아래 사상가들의 입장을 단순히 비교 정리하는데 그칠 때가 많았다. 아니면 그들의 명성에 막연한 기대를 걸고 한국 문제에 대한 해법을 단도직입적으로 묻거나. 아무리 대가라지만 어떻게 남의 나라 사정에 정통할 수 있겠나. 우리의 현실을 묻되 근대성이라는 보편적 주제로 맥락화해서 질문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얻는 해답이 자세하고 방대할 수 없다. 하지만 거기서 우리의 문제 해결을 위한 씨앗 같은 통찰을 얻어내고, 나아가 우리의 현실과 사상가들의 생각을 비교하며 사유의 도약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이번 인터뷰 시리즈의 지향점이다."
_지젝, 랑시에르 등 그동안 소개된 인터뷰들의 의미를 짚는다면.
"첫 회를 장식한 지젝은 철학자로서 오늘날 세계의 위기에 대해 '현실적 대안은 없다' '단기적 해결책과 달리 장기적 해결책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 명쾌하고 단호한 진단이야말로 이번 기획의 지향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아울러 근본적 사유에만 매몰돼 현실 문제에서 소외되고 있는 한국 철학계에 경종을 울린다. 민주주의적 요구가 발생하는 이유를 짚은 랑시에르의 논의는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우만은 지난해 영국 폭동을 '좌절한 소비자들의 반란'으로 규정했는데, 이는 오늘날 대중 시위가 사회변혁 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를 해명한다. 우리의 촛불시위를 분석하는 데에도 얼마간 유효하겠다."
_6회부터 소개될 신진 학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주목할 점은.
"이들은 연배나 성향상 우리의 486세대와 비슷하다. 즉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높은 관심을 공유하고 있는 세대에 속한 학자들이다. 이들을 통해 한국 너머 세계적 차원의 동시대적 관심사를 접할 수 있고, 이들이 개진하는 상황 진단이 우리에게 좀 더 직접적으로 유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토스카노는 대중운동이 광신주의로 변질되는 현상이 자유주의 이념과 연계돼 있음을, 멘케는 평등 이념이 어떤 조건의 개인들에게는 폭력으로 느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지적하는데 둘 다 한국 사회의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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