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에서 파주까지 택시로 출퇴근을 하다 보니 간혹 만났던 기사님을 또 뵙는 경우가 생긴다. 매일같이 엇비슷한 시간에 부르는 콜택시인데다 사는 동네가 좁기도 한 까닭이렷다. 버스비 일이백 원에도 민감한 게 소시민인데, 정류장마다 길게 줄 선 이들이 나보다 다 가난해서 다리 퉁퉁 붓도록 버스에 매달려 가는 것도 아닐 텐데, 어쩌려고 나는 이리 길에 돈을 뿌리는지 원.
카드 한 장을 교통비로 쓰는 나, 청구서에 찍혀 나오는 액수가 가볍게 백만 원을 돌파하고 난 뒤에는 핑계랍시고 우울증도 생긴 듯했다. 하루는 토요일 점심에 버스 타고 출근하기 프로젝트에 도전했다가 삼십 분, 한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 버스에 질려 그만 동네 커피숍으로 일거리를 싸들고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소설가 김훈 선생님, 택시를 화두로 펼치시는 말씀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지 뭔가. "택시가 얼마나 좋은 거냐면, 너나 나 같은 운전 무지랭이들을 원하는 곳에 딱 내려놓거든. 놀라운 거라고. 내가 오이도에 있는 맛있는 자장면 집에 가려면 택시를 타야 하는데 그거 없어봐, 내가 맛있는 자장면을 먹을 수가 있겠냐고. 말없이 감사히 타."
그나저나 오늘 아침에 만난 기사 아저씨, 벌써 네 번째 나를 태우는 거라시면서 거스름돈 오백 원은 왜 안 주시나. 고향인 부여에 집 짓고 눌러앉겠다고 하시더니 옛수 아저씨, 땅 사시는 데 보태시든가요.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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