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어…. 너만의 고민이 아니야, 자 내 손을 잡아."
5인조 밴드가 자작곡 '내 손을 잡아'를 부르기 시작하자 300여명의 관객들은 탄성과 함께 노래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노래하는 보컬의 성량에서 드러머의 몸짓, 기타리스트의 손 동작까지 여느 실력파 밴드들과 다를 게 없었다. 다만 눈에 띄었던 것은 딱 하나, 무대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는 과정에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뿐이었다. '4번출구'라는 이름의 이 밴드는 1급 시각장애인들로 구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10일 저녁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섬유센터 이벤트홀에서 열린 '2012 나다 페스티벌'. HB기획과 강남장애인복지관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허물고 함께 예술을 즐기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이 공연에서 '4번출구'는 범상치 않은 기량을 선보여 관객들의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4번출구는 리더이자 어쿠스틱 기타를 맡은 한찬수(50), 보컬과 전자기타를 담당하는 고재혁(34), 베이스 기타 담당 윤형진(28), 드러머 홍득길(31)씨 등 시각장애인 4명이 2006년 한 복지관에서 악기를 배우다 결성한 밴드 그룹. 친목 도모 차원에서 음악을 시작했다 지난해 막내 배희관(26)씨가 보컬과 리드 기타 멤버로 들어오면서 지금의 밴드로 완성됐다. 지난해 10월 '내 손을 잡아'를 타이틀 곡으로 삼아 '스토리 오브 4번출구'라는 이름의 음반도 냈다. 70, 80년대 인기를 끌었던 가수 이용복처럼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내에서는 유일한 시각장애인 밴드다.
이날 오후 7시부터 열린 공연에는 4번출구를 비롯해 5개 밴드가 참여했다. 비장애인 전문 밴드들 틈에서 4번 출구는 4번째 공연을 맡았다. 그 동안 클럽이나 사회복지관 등에서 공연을 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많은 관객 앞에서 다른 밴드와 함께 하기는 처음. 첫 곡으로 가수 전인권의 '돌고돌고돌고'를 부를 땐 개그맨 이동우씨가 깜짝 등장해 협연을 하기도 했다. 총 35분 동안 공연을 한 4번출구는 마지막 5번째 곡으로 자작곡 '내 손을 잡아'를 불렀다. 이 곡을 작사한 멤버 고재혁씨는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상대방의 슬픔과 상처를 알 수 있다는 내용이다. 장애가 있지만 타인의 상처를 보듬고 다양한 사람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막내 배희관씨는 "우리의 음악 자체보다 '장애인 치곤 잘하네'라는 평가에 속이 상하기도 했다"며 "장애인이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 음악을 하는 사람이 마침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보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관객들의 평가도 좋았다. 고교생 김수완(17)군은 "오늘 공연을 보니 장애를 갖고 있다는 건 아주 작은 차이가 있을 뿐이란 걸 깨달았다. 느낀 걸 친구들한테 전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공연이 끝난 뒤 리더 한찬수씨는 "그 동안 공연에선 매번 '장애인 밴드'라는 타이틀을 달았는데 오늘은 장애ㆍ비장애 구분 없는 아티스트들의 무대였고 거기서 한 몫 했다는 게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노래를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노래를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