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를 확대하려면 동시에 복지시스템도 바꿔야 합니다." 지난달 말 보건사회연구원장에서 물러난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의 말이다. 현 복지시스템은 복지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5~7% 수준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향후 복지지출이 GDP의 10% 이상인 '중복지' 국가로 가려면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복지 재원은 정부가 내지만 서비스 전달은 90% 이상 민간이 대행하는 구조"라며 "기본적으로 이익추구가 목적인 민간은 언제든 정부 기조와 배치될 수 있어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같은 엇박자의 대표적인 사례로 최근 어린이집 휴업 사태를 들었다. 대폭 확대된 정부 예산이 민간 어린이집을 통해 수요자(학부모)에게 전달되다 보니, 어린이집들이 제도 변화를 틈 타 "우리도 지원해 달라"며 실력행사에 나서도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보육시설(2010년 말 기준) 가운데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공공조직(국공립)은 5.3%에 불과하고 가정형 보육시설 등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 89.5%에 이른다.
복지예산이 새 나가는 구조적 허점은 제도, 인력 등 곳곳에서 나타난다. 노인요양시설들이 실제 근무하지 않는 요양보호사를 근무 중인 것처럼 꾸미거나 사망한 사람에게 요양서비스를 제공했다고 허위 보고하는 등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부당 청구한 건수는 2009년 9,824건에서 2010년 3만3,151건으로 불과 1년 새 3배 이상 치솟았다.
의료 분야에서도 과잉진료로 새 나간 금액이 2010년 한 해에만 2,000억원에 달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유재중 의원(새누리당)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과잉진료 건수는 2007년 1,164만건에서 2010년 1,874만건으로 60% 이상 급증했다.
선행을 가장해 공금을 빼먹는 일부 복지기관 종사자들의 행태도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현재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부산 S복지재단 이사장은 일가족이 운영하는 노인복지센터, 요양병원에 지급되는 보조금 1억8,000만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2007년부터 4년 넘게 이사장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쌀 양파 밀가루 등 식자재를 공급받으며 단가를 부풀렸는데도 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들은 심지어 조경공사를 하면서 소나무 한 그루 당 수천 만원을 주고 구입한 뒤 판매업자에게서 일정 금액을 돌려받아 수억원을 챙겼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3, 4년 새 복지서비스의 외형만 급하게 늘리다 보니 복지 예산이 수혜자에게 제대로 돌아가는지에 대한 고려가 미흡했다고 지적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복지서비스에 과도한 시장논리가 적용되고 있지만, 감시망을 재정비해서라도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종 경성대 교수는 "복지시설에 대한 직접 지원보다는 수혜자에게 쿠폰을 나눠줘 시설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바우처 제도를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시장의 선택기능을 강화하자는 얘기다. 김 교수는 또 "노인장기요양제도를 건강보험공단에서 민간에 위임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지방자치단체에 일임한 일본처럼 지역사회의 감시체계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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