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 점검 중이던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에서 전원 공급이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더욱이 운영사인 한국수자력원자력(한수원)은 자칫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던 사고를 한 달 뒤에야 보고해 심각한 안전 불감증을 드러냈다.
13일 원자력안전위원회(안전위)에 따르면 지난달 9일 오후 8시43분께 고리원전 1호기에서 외부 전원 공급이 중단되고 비상발전기마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12분간 이어졌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고리원전 1호기는 1978년 가동을 시작해 2007년 수명을 10년 연장했다.
당시 고리1호기는 계획예방정비 중 핵연료 교체와 부품 점검을 위해 가동을 멈춘 상태였다. 그러나 전원 공급 중단으로 냉각수 순환 펌프가 멈췄고, 원자로 안의 냉각수 속에 있는 핵연료봉은 계속 잔열을 내는 상태였다. 전원 중단이 더 길어졌다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처럼 냉각수가 끓어 증발하면서 핵연료봉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 녹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재기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만약 전력 공급 중단이 가동 중에 일어났다면 대형폭발로 이어질 수 있었던 중대 사고"라고 말했다.
원자력안전법에는 원전 고장이나 사고 발생 시 원자력 안전 관리를 총괄하는 안전위에 즉시 보고하도록 돼있지만, 한수원 측이 한 달이 지난 12일에야 이 같은 사실을 안전위에 알렸다. 안전위 관계자는 "원전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데, 이번 사건은 원전 안전 의식이 부족해 벌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위원장은 "사고 자체보다도 제때 보고를 하지 않은 게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수원 관계자는 "전원이 12분 만에 다시 공급되자 고리 원전측이 보고할 시기를 놓친 거 같다"고 해명했다. 한수원이 세운 '방사선비상계획서'는 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15분 안에 비상 발령을 하고 상황을 보고하도록 돼 있다.
안전위는 사고가 발생한 고리1호기의 가동을 중지시키고 현장에 조사단을 파견해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한수원과 지식경제부도 고의 은폐 여부에 대해 감사를 실시해 관련자를 엄중, 문책할 방침이다.
변태섭 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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