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재정을 메우려는 이탈리아 정부의 강력한 탈세 단속이 계속되면서 애꿎게 된서리를 맞는 분야가 있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자존심, 바로 명품 산업이다. 명품 산업 종사자들은 고액 현금 거래를 규제하는 정부의 조치 때문에 중국이나 인도 등 외국 구매자들이 더 이상 이탈리아를 찾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명품 업계가 특히 반발하는 것은 정부의 고액 현금 사용 제한이다. 지난해 재정위기 와중에 집권한 마리오 몬티 총리는 세원 투명화 차원에서 ▦1,000유로(148만원) 이상 상품 구매시 현금거래 금지 ▦3,600유로(533만원) 이상 거래시 구매자 신원 명기 의무화 등 강력한 정책을 내놓았다. 현금을 받아서 세금을 안 내는 대신 소비자에게 가격을 낮춰주는 오랜 관행에 쐐기를 박으려는 의도였다. 비록 업계 반발로 1,000유로 제한 조치가 지난달 말 외국인 구매자에 한해 족쇄가 풀렸지만, 다른 조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정부의 강력한 탈세 방지책이 잇따르면서 러시아, 중국, 브라질 등 신흥국 출신 거부들이 주요 고객인 보석업계가 특히 큰 타격을 받았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9~12월 이탈리아 보석업계 매출은 30% 이상 줄었는데, 외국인 부자들이 신원 노출에 거부감을 느껴 이탈리아에서 쇼핑하기를 꺼려서다.
연매출이 33억유로(4조8,854억원) 규모에 이르는 요트업계도 큰 타격을 받았다. 이탈리아 정부가 세수 확보를 위해 요트 크기에 따라 연간 800~2만5,000유로의 세금을 부과했기 때문인데, 그 결과 모나코나 크로아티아에 배를 대 놓고 항해를 즐기는 부자들이 늘었다.
나라 곳간을 튼튼하게 하려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문제는 명품 산업이 이탈리아 경제를 선도하는 분야라는 점이다. 밀라노 등은 명품을 사려는 외국인 구매자의 발길이 줄어들었는데, 현금거래에 제한이 없고 비거주자(외국인)에게 8%의 부가가치세를 환급해 주는 스위스가 그 반사 이익을 얻고 있다.
명품업체 연합조직인 알타감마의 아르만도 브라치니 사무총장은 "돈이 다른 나라로 흘러가면 투자나 일자리가 사라진다"며 "탈세 방지책이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 우려했다.
그러나 세제 전문가인 카를로 가르바리노 보코니대학 교수는 "신고되지 않은 소득이 명품 산업 쪽으로 더 흘러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며 "일부 거래 제한이 있더라도 상품 거래를 감시하는 수단이 필수적이다"고 강조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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