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쓰레기 더미를 보고 있으면 1년 동안 정부가 도대체 뭘 했는지 분통이 터진다." "방사능 오염이 가신 줄 알고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알고 보니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오염 작업이 이뤄졌다. 고향을 다시 떠나고 싶다."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과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 발생 1주년을 앞두고 사고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한결같이 정부와 정치권의 무능함 및 늑장 대응을 비판했다. 일본 정부의 집계에 따르면 지진과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미야기(宮城), 이와테(手岩), 후쿠시마(福島)현 등 도호쿠 3현에서 2,253만톤의 쓰레기가 발생했지만 이중 5% 가량만 처리됐다. 주민들은 1년이 지나도록 95%의 쓰레기가 현장에 그대로 쌓여있는 현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재해지역 식당에서 만난 한 주민은 대낮인데도 술에 거나하게 취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대지진 이후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현실을 맨 정신으로 견딜 수 없어 매일 술을 마신다"며 "쓰레기 문제조차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를 보면서 나의 미래 역시 불투명하다는 걱정을 한다"고 토로했다.
이와테현 피해 지역에서 작업 중인 인부는 일손 부족을 호소했다. 그는 "치워야 할 쓰레기는 잔뜩 쌓여있는데 현장에 투입되는 인원은 늘지 않고 있다"며 "쓰레기를 언제 치울 수 있을지 답답하기만 하다"고 하소연했다.
일본 정치계는 리더십의 부재 속에서 정쟁과 파벌싸움으로 지난 1년을 허비했다. 누구보다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해야 할 간 나오토(菅直人) 전 총리는 임기응변적 위기관리로 초동 대응에 실패했다. 초동 대응 실패는 야당은 물론 여당으로부터도 공격을 받는 빌미를 제공했으며 여야 모두는 재난 복구는 뒷전에 둔 채 총리 교체를 위한 정쟁에 올인했다. 간 전 총리의 바통을 이어받은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 역시 대지진으로 위축된 경제를 회복하겠다며 소비세 인상, 환태평양경제동반협정(TPP) 협상 참여를 서둘렀지만 당내에서마저 불안한 지지에 발목이 잡혀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이르면 6월, 늦어도 9월에는 또 다시 총선을 치러 총리를 바꾸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정치권이 쳇바퀴를 도는 사이 복구를 위한 전망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현장에서는 쓰레기를 치울 인부가 없다고 하소연하지만 복구를 위한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가운데 절반이 집행되지 않은 채 잠자고 있다. 인프라 정비를 위한 예산 집행은 20%에 그치고 있다.
복구를 전담하는 부흥청이 사고 발생 10개월만인 1월 뒤늦게 발족했지만 경제산업성, 문부과학성 등 여타 부서와의 업무 조정이 원활하지 않다. 일부 부처가 업무 이관을 두고 난색을 표해 부흥청이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할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미야기현의 재해지역에서 만난 주민은 "쓰나미가 발생한 뒤 2, 3개월 후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 방문해 쓰레기를 함께 치웠다. 그 의원은 눈앞의 현실에 어이없어 했고 소리 내 울기도 했다. 나가타초(일본 국회의사당이 있는 지역)로 돌아가면 이 문제를 가장 먼저 해결하겠다고 다짐까지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 의원의 눈물에서 진정성을 느꼈고, 지긋지긋한 쓰레기 더미도 금방 치워질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도쿄로 돌아간 이 의원은 정파 싸움의 중심에 서서 상대 당을 헐뜯는 일에 열중한 반면,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며 "더 이상 정치인들을 믿지 않기로 했다"고 말을 맺었다. 일본 정치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
한창만 도쿄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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