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시 압박이 시작… "좋은 고교 못가면 인생도 끝나"
올해 중학교 2학년이 된 명주용(14ㆍ가명)군은 요즘 "나도 어른이 됐구나"라는 생각을 자주한다. 키도 지난해 12㎝나 컸고, 몸 구석구석에 털도 부쩍 많아졌다. 예전에는 부모 말도 안 듣고 학원도 곧잘 빼먹었지만 요즘은 그러지 않아 책임감도 생긴 것 같다. 하지만 왠지 모를 위기감이 찾아올 때면 혼자 있고 싶어진다. 명 군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4년 후 있을 (대학입학) 시험을 망치면 내 인생도 끝나버릴 것"이라고 걱정을 털어놓았다.
차석호(14ㆍ가명)군은 갑자기 화를 내는 일이 많아졌다. 교실에서 이유 없이 물건을 집어 던지기도 하고, 부모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후회한다. 사춘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른들이 말하는 '중2병'에 걸린 게 아닌지 걱정도 된다. 차 군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변화에 적응하는 게 힘들고 피곤하다. 내 주변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고개를 떨궜다.
흔히 청소년기를 매서운 바람과 성난 파도가 몰아치는 '질풍노도의 시기'라 하지만 그 중심에 중학교 2학년이 있다. 그래서 심신이 유독 심하게 아프다. 자아형성이 이뤄지는 불안한 격동기의 홍역을 치러내기가 쉽지 않다. 인터넷에는 허세, 소외감, 자기망상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중2병' 자가진단 항목까지 나돌 정도다. 학교에서는 '문제 학년'이라 해서 특별 관리한다. 학교폭력문제가 대두되자 교육당국이 중학교 2학년부터 복수담임제를 우선 시행하겠다고 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프랑스 소설가 장 콕도의 문제작 에서 자기 세계에 빠져 반사회적 행동을 일삼는 주인공 폴의 나이가 14세라는 점을 기억하자. 한국일보는 '중2 병'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심층인터뷰로 중학교 2학년들의 속내와 아픔의 원인을 들여다봤다.
빨리진 입시 이에 따른 스트레스
김수현(14ㆍ가명)군은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학교에 간다. 9시에 시작하는 수업은 오후3시까지 계속된다. 그 다음은 학원이다. 내신 성적을 잘 받기 위해 학교 수업 진도에 맞춰 복습과 예습을 하고, 틈틈이 고교 교과과정도 미리 배운다. 밤 10시까지 학원 수업이 계속되기 때문에 저녁은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히 때우기가 일쑤다. 그렇게 학원수업까지 마치고 집에 가면 급하게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잠든다.
아이들이 보는 '중2병'의 뿌리는 입시 스트레스에 있었다. 김 군은 "사회 과목에서 한 문제 틀려 97점을 받았는데 전교 288명 중 60등이었다. 시험을 볼 때마다 '살'이 떨린다"고 말했다. 최지연(14ㆍ가명)양은 "시험 성적 외에도 내신에서 태도 점수가 10점이다. 교과서를 빠뜨리고 오면 -1점, 이런 식이다"며 "시험 성적은 다들 만점에 가깝기 때문에 가산점 같은 걸 받지 못하면 원하는 고교에 진학할 수 없어 다들 부담을 크게 느낀다"고 털어놨다.
서열화된 학교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
중학교 2학년이 고교입시에 목을 매는 까닭은 이 때부터 내신성적이 고교입시에 반영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떤 고교에 진학하느냐에 따라 대학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의 눈에 고교는 철저히 서열화 돼 있었다. 입학에 필요한 점수를 기준으로 특수목적고등학교(외국어고ㆍ과학고 등), 국제고, 자율형고교, 일반고, 비인문계고 순이다. 채지원(14ㆍ가명)양은 "수준 낮은 고교에서 좋은 대학에 많이 갔다는 얘기를 거의 듣지 못했다"며 "고교를 어디로 가느냐에서부터 인생이 갈린다"고 말했다. 차 군은 "학교는 물론이고 바깥에서도 공부를 못하면 무시하고 '너는 인생의 패배자'라는 눈으로 보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이들의 눈에 비친 교실도 '경쟁의 도가니'나 다름없다. 교실은 성적이라는 씨실과 물리적 힘이라는 날실로 촘촘히 짜인 그물과 같다. 중1때 서열이 정해지면 이후부터는 그 서열이 일상을 지배한다. 명 군은 "2학년이 돼 반이 바뀌었지만, 누가 세고 공부 잘 하는 친구인지 딱 보면 안다"고 말했다.
학교폭력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채 양은 "불쌍하단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들은 대체로 소심하고 침울한 성격"이라며 "괴롭힘을 당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도 반은 된다"고 말했다. 명군은 "진짜 안 풀리는 애들은 주로 가정 형편이 안 좋다"며 "우리 반만 봐도 아버지는 술 먹고 들어와 '깽판'을 치고 집에 돈도 없는 애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차 군은 "우리는 일진의 눈에만 띄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거들었다.
꿈을 잃어 가는 아이들… 친구 없는 또래집단
좋은 대학을 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아이들의 믿음은 단단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꿈은 무엇인지에 대한 幸?〈?좀처럼 답하지 못했다. 차 군은 "잘 모르겠다"며 머뭇거리다 "돈이 있어야 살아 남는 세상이니까 우선은 부자가 돼야겠다" 고 말했다. 최 양은 "대학원을 나와도 취업하기 힘들다는데, 꿈 같은 건 나중에 생각하면 된다"면서도 "사실 그것 때문에 고민이 많지만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아이들은 "선생님들은 최상위권 학생들에게만 관심이 있을 뿐 평범한 학생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또 "학교마다 상담선생님이 있긴 하지만, 일부러 찾아가기 전에는 부르지 않아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도 했다. 명 군은 "부모님도 모두 바쁘다는 걸 알기 때문에 굳이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다"며 "같은 반 친구들도 필요한 정보가 있을 때나 서로 얘기를 할 뿐, 그 외에는 게임 말고 같이 얘기할 만한 게 없다"고 말했다.
친구 사이가 경쟁 관계가 되다 보니 또래 문화나 놀이는 찾아 볼 수 없다. 축구도 농구도 학원에서 배우는 과목의 하나일 뿐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놀이감이 못 된다. 채 양은 "친구들과 카카오톡으로 채팅을 하긴 하지만 외모 이야기나 연예인 얘기가 전부"라며 "약점이 될 수 있는 고민 얘기 같은 건 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2병'은 있다"
아이들은 '중2병'은 있고, 그 때문에 불안한 자신을 느낀다고 했다. 또 빠져나갈 길을 찾고 싶다고도 했다. 김 군은 "좋은 일이라고 해봐야 성적 아니면 등수 정도고, 내 성적에 따라 가족 분위기가 달라진다. 힘들 때 누군가 날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차 군은 "공부도 잘하고 부자도 되고 싶지만, 고작 종이에 불과한 돈 때문에 자살했다는 뉴스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힘이 빠진다"고 한숨을 쉬었다. 채 양은 "선진국에서는 성적 보다 개인의 개성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우리나라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 "너는 우등생, 나는 열등생" 좌절감
올해 중학교 2학년이 된 박민수(14ㆍ가명)군은 요즘 의욕을 크게 상실했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공부가 재미있었지만 학년이 바뀌면서 흥미를 잃었다. 생소한 영어 문법 문제나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고 있자니 한숨부터 나온다. 진로문제도 걱정이다. 과학고나 외고, 마이스터고 등 특목고에 자사고 자율고 과학중점학교까지 다양해진 고등학교 중 어떤 곳을 선택해야 할지도 고민이다. 박군은 "특목고에 들어가려면 지금부터 입시를 준비해둬야 하겠지만 지금은 내 적성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2'가 힘들다. 신체는 빠르게 성장하지만 정신 발달은 이에 따라가지 못하면서 여러가지로 혼란을 겪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받는 성장통은 학교폭력으로 이어지고 이는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된다. 무엇이 '중2'를 아프게 하는 것일까.
늘어난 학업부담
박군의 경우처럼 중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면 우선 학업부담이 커진다. 일단 주요 교과목의 난이도가 크게 높아진다. 영어만 해도 중 1학년까지는 초등학교 과정과 마찬가지로 회화 위주의 수업이 진행되지만 2학년부터는 까다로운 영문법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장우리 EBS 영어강사는 "중 1학년까지 영어를 잘 하던 학생들도 2학년이 되면서 문장의 형식(1~5형식), 시제, 수동태, 부정사 등 문법의 주요 내용을 접하게 되면 흥미를 잃고 성적이 떨어지곤 한다"며 "영어 학습에 있어서도 중2가 고비"라고 설명했다.
수학에서도 연립방정식이나 확률, 도형의 닮음 등 고등학교 과정과 연계된 높은 난이도의 문제들을 접하게 된다. 특히 2007년 개정교육과정에서 중3과정이었던 곱셈공식이 중2 과정에 편입됐다. 이태진 강남구청 인터넷수능방송 강사는 "고교 과정과 연계되는 확률이나 기하 단원은 학생들의 흥미도에 따라 학습 편차가 크게 생긴다"며 "한 번 흥미를 잃어버린 학생은 성적을 올리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사회ㆍ과학 과목도 마찬가지다. 7차 교육과정 개정에서 사회와 과학 교과에 통합 사고력을 요구하는 단원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과학에서는 고교 과정에서 배우던 열에너지 계산 문제가 중학교 2학년 과정에 편입됐다. 예컨대'섭씨 20도의 물 300g 과 80도의 물 500g을 섞으면 물의 온도는 몇 도가 되는지 계산하라'는 식이다. 고등학생들에겐 어렵지 않은 문제지만 '에너지'개념이 생소한 중학생들에겐 고난이도다.
사회과목에서도 1학년에는 지리와 일반사회를 공부하지만 2학년부터는 까다로운 국사와 세계사가 본격 등장한다. 워낙 방대한 분량 역사를 압축적으로 기술해 놓은 탓에 시대ㆍ연도별 사건이나 인물을 정리해 이해하는 게 쉽지 않다.
물론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업부담도 커지고 난이도도 올라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청소년심리상담전문가들은 중2 때가 학업 스트레스가 가장 많은 때라고 입을 모은다. 이은주 서울시청소년상담지원센터 상담팀장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자살충동이 늘기 시작하다가 중2때 극에 달한다. 이 시기에 우등생과 열등생의 차이가 극명히 갈리기 시작하고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은 상대적으로 좌절감을 경험하는 시기"라며 "또 이런 갈등은 2학년부터 밖으로 표출된다"고 설명했다.
커진 입시 스트레스와 심리적 불안
중2부터는 고교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한다. 최근에는 특목고와 자사고, 자율고 등이 늘면서 최상위권 학생뿐 아니라 평범한 학생들도 진학 갈등을 겪게 됐다. 소위 명문고 진학 여부가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되면서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라는 보이지 않는 등급까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늘교육 임성호 대표는 "이전까지 특목고 입시가 최상위권 학생들의 경쟁이었다면 자율고 등장으로 고교 입시는 중상위권 학생들로까지 경쟁이 확대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공부와 미래에 대한 압박감은 정서적 불안과 결합돼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중2병'에서 보이는 소외감, 허세, 자가망상 등의 특징은 실제 중학교 2학년 학생들 사이에 많이 나타난다. 신체적으로 급격한 성장이 이뤄지는데 반해 심리적 성장은 더디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학교폭력 문제가 중2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전국 중ㆍ고생 3,734명을 조사해 지난달 7일 발표한'학교폭력 피해실태'에 따르면 학년별 학교폭력 피해율은 중학교 2학년이 15.96%로 중1(14.59%), 중3(10.45%), 고1(4.66%), 고2(4.62%)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한국청소년상담원 배주미 박사는 "1학년은 학교 적응에 바빠 긴장감이 유지되고 3학년은 고교 입시 준비로 신경을 쓸 게 많지만 2학년은 긴장감이 풀리고 학교 내 힘의 논리도 터득하게 되면서 학교 폭력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중2병 테스트
1.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2. 내가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망상에 빠져 만화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이 있다.
4.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5.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상당히 오글거리는 멘트를 많이 적어 놓는다.
6. 유난히 이성 앞에서 허세를 많이 부린다.
7. 허구적인 소설을 많이 쓴다.
8. 혼자서 중얼거린다.
9. 칼을 소지하고 다니는 걸 자랑스럽게 여긴다.
10. 파멸, 광기, 피 등. 만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멘트를 거리낌없이 내뱉는다.
11.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강하고, 강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약해진다.
12. 뭐든지 부정적으로 보는 성향이 깊다.
13.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우선 내뱉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깊다.
14. 나는 남들보다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15. 나는 큰 상처를 가지고 있다.
16. 온라인상에서 "…"을 많이 붙인다.
17. 주먹으로 벽을 치거나 가래침 뱉는 걸 자랑스럽게 여긴다.
18. 깡패는 나의 우상이다.
19. 자살을 자주 생각한다.
20. 언제나 무뚝뚝한 표정으로 남들을 바라본다.
●1~4개 해당 정상
●5~9개 감성이 풍부한 사람
●10~14개 철이 덜 든 사람
●15~20개 중2병
인터넷에서 청소년 사이에 유행하는 심리테스트. 재미로 보는 다른 심리테스트처럼 최초 작성자가 분명하지 않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박철현기자 karam@hk.co.kr
■ 명문대 간판외엔 길을 몰라요
10대의 위기가 비단 '중2'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학업부담으로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은 다름아닌 고1. 이 시기에 청소년들은 또 한 번의 깊은 늪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고3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입시 스트레스가 고1 학생들에게까지 확대된 탓이다.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전국 고등학교가 개학 후 첫 수업을 시작한 5일 오후 저녁식사도 거른 채 대치동 한 영어학원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김모(16ㆍ개포고1)군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중간고사'다. 김군의 꿈은 명문대 공과대학에 진학해 벤처사업가로 성공하는 것. 그러니 당장 좋은 성적을 받아둬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생각뿐이다. 김군은 "재수생이 아닌 바에야 수능으로 좋은 대학에 가기는 어렵고 수시 전형을 노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내신이 중요하기 때문에 1학년 때부터 바짝 긴장해야 한다"며 "선생님들도 고1 중간고사 성적이 고3까지 유지되는 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학기 첫날이지만 김군의 학업 스케줄은 빽빽하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원 2곳 다니기도 벅찬데 선행학습으로 인터넷 강의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군의 등교 시간은 오전 7시50분. 7시 전에는 일어나야 한다. 오후 4시20분쯤 수업이 끝나면 5시20분까지 대치동 영어학원에 가야 하고 오후 8시엔 수학학원도 간다. 영어학원 수업이 없는 수요일엔 국어ㆍ논술학원도 다닐 생각이다. 밤10시 학원 수업을 끝내고는 집 앞 독서실에서 물리 과목 인강(인터넷 강의)을 들었다. 방학 때 전 과목 선행수업을 끝내둘 생각이었지만 아직 마무리 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마음이 급하다. 김군이 이날 독서실을 나선 것은 다음날 새벽1시30분.
김군이 이처럼 학기 초반부터 입시생처럼 파고드는 이유는 명문대에 들어가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다. 교사인 어머니와 은행원인 아버지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김군은 "부모님은 꼭 서울대에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내 꿈도 그렇다. 하지만 중학교 때 성적은 상위 10% 정도밖에 안 돼 이번 중간고사 때 성적을 올려 놓지 않으면 영영 꿈을 포기하게 될 것 같아 두렵다"고 말했다.
학업부담과 심리적 압박감은 다른 고1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학기 중에도 학원 3곳과 과외 2개를 병행하고 있다는 홍모(16ㆍ중동고1)군은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대치동에서 영어와 수학 학원에서 주2회 3시간씩 수업을 듣고 일요일엔 국어ㆍ논술학원 수업도 듣는다. 학원 수업이 없는 날엔 수학ㆍ영어 전문강사에게 과외 수업도 받는다"고 말했다. 홍군은 "1학년 말 정도면 웬만큼 대학 간판이 결정된다고 들었다"며 "좋은 성적을 받아 명문대에 가야 하는데 자율고라 성적 좋은 애들이 많이 왔다는 얘기를 듣고 긴장된다"고 말했다.
학기 중에도 학원에서 진행되는 그룹과외 수업만 3개를 듣는다는 유모(16ㆍ가락고1)양은 "우선은 빨라진 등교시간과 길어진 수업시간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지만 중학교 최고 학년에서 고등학교 막내 학년이 되면서 선배들 눈치 보는 것도 스트레스가 된다"고 말했다. 유양은 또 "중3 때는 특목고나 자율고에 진학할 생각이 없어 그나마 학업 부담이 적었지만 고1 성적부터는 대입에 직결되기 때문에 느껴지는 압박감은 배 이상"이라고 말했다.
2학년이 된 윤모(17ㆍ강남 D고)군은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했지만 1학년 성적이 기대보다 낮게 나와 좌절했다"며 "성적표를 받아 들었을 땐 자살충동까지 느꼈다"고 털어놨다. 윤군은 "내 성적이 목표한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필요한 수준과 큰 차이가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체가 고통이었다"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고교 문턱부터 입시부담에 시달리게 된 것은 입학사정관전형 등 수시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다. 서울대가 2013학년도부터 수시 비중을 80%까지 늘리기로 했고 이어 서울 주요 대학들도 70% 이상을 수시로 선발할 계획이다. 재학생 입장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보다 내신과 교내외 수상경력, 외국어 성적 등 '스펙'을 만드는 게 중요해졌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 연구소장은 "특히 수시전형에서는 내신이 비중이 확대되면서 고3이 되기 전에 대입의 윤곽이 결정되는 게 현실"이라며 "고3뿐 아니라 고1까지 입시 최전방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박철현기자 karam@hk.co.kr
■ 나는 왜 '엄친아'가 못 될까… 3명중 1명 "2주이상 우울"
청소년들이 겪는 절망감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2주 이상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슬프고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다'는 청소년이 3명 중 1명 꼴(37.5%)로 조사됐다. 청소년의 우울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가늠할 수 있는 결과다.
또 청소년(13~24세) 3명 중 2명 꼴(64.8%)로 일상 중 스트레스를 '가끔 또는 자주 느낀다'고 대답했다. 여성가족부가 통계청에 의뢰해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만 9~24세 청소년 3,492명과 주 양육자 2,200명을 대상으로 발표한 청소년종합실태조사에서 이같이 나타났다.
중2학생과 고1학생이 겪는 우울증 경험도 증가 추세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중·고등학생 약 8만 명(중학교 400개교, 고등학교 400개교)을 온라인 설문조사한 결과, 우울증을 경험한 중2 학생은 27.8%(05년)에서 33.9%(09년)로 6.1% 증가했다. 고1 학생 역시 32.4%에서 38.3%로 늘었다.
이러한 통계는 청소년기를 '걱정 없이 공부만 하는 시기' 라는 어른들의 생각과 달리 학생들의 고민이 학업 외에도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은주 서울시청소년상담지원센터 상담팀장은 "아이들은 또래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지만 또 한편으론 각기 다른 형태의 열등감도 경험한다"며 "공부만 열심히 하는 전통적 모범생은 소위 잘나가는 아이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기 십상이다. 공부도 잘하고 외모도 뛰어난데다 부유하고 운동도 잘하는 '엄친아'가 돼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청소년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고 말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 중2병, 아이 탓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중학교에서 벌어지는 학교 폭력 등의 문제가 도를 넘고 있다며 반드시 뿌리뽑아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중2병'이라는 단어가 학교 폭력과 우울증에서 이어진 자살 등의 책임을 학생 개인문제로 돌리는 잘못된 용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중2병'이 입시를 위한 주지교육 중심인 현행 중등교육과정과 13~16세 아이들의 육체적 정신적 발달 과정이 서로 맞지 않아 생기는 사회적 질병이라고 봤다. 중등교육 과정을 대폭 손질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이유다.
조흥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중학생들이 보이는 일탈이나 우울감 등의 문제는 초기 청소년기의 한 특징일 뿐인데 이를 '중2병'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중학교 2학년이 특히 문제가 되는 이유는 아이들이 이 시기부터 경쟁을 뚫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싹틀 때이기 때문"이라며 "따라서 학교폭력, 자살 등의 문제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춘기 때는 중증 우울증을 앓는 비율이 3분의 2까지 치솟는다는 해외 연구 사례도 있지만, 이 시기를 지나면 자연스럽게 치유된다"며 "고민이 많아지거나, 폭력성을 띄는 것도 호르몬 변화와 뇌의 분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문제는 생물학적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이나 활동의 기회를 주지 않는 데 있다"며 "입시 때문에 학교다, 학원이다 하루 종일 갇혀있다시피 하니까 친구를 괴롭혀서라도 에너지를 발산하려는 것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교육현장의 목소리도 다르지 않다. 경기 시흥 장곡중학교 백원석 교사는 "정부는 학교폭력을 없애겠다며 무조건 체육수업을 늘리라고 하는데 체육을 싫어하는 아이들은 어떡하란 말이냐"며 "학교가 입시 스트레스를 주는 곳이 아니라 즐겁게 다닐 수 있는 곳이 되지 않고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신성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연구실장은 "현행 제7차 교육과정은 학습의 난도가 높을뿐더러, 학년당 수업교과 수를 8개로 제한하면 음악은 1학년, 도덕은 2학년, 미술은 3학년 몰아서 배우는 식이어서 전인교육이나 인성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현행 중등교육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데 생각을 같이 했다. 최임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에는 형제나 또래들과 자연스럽게 놀면서 사회성을 키웠지만 요즘은 그렇지 못해 문제"라며 "중등 교육이 또래나 선후배들과 상호작용을 많이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용린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춘기의 정점에 있는 중학생들에게 지금처럼 정규교과 과정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비판했다. 문 교수는 "고등학교부터 교과 학습 내용을 본격화해도 늦지 않다"며 "중등교육을 적성과 진로 탐색을 위한 체험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범이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수석부회장은 "성적이라는 외길만을 걷도록 하는 학교에서 성적이 좋지 못한 아이들은 일탈할 수밖에 없다"며 "학력이나 학벌에 따른 차이를 없애지 않고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진단했다. 박 부회장은 "위기에 처한 중학교 2학년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고교 서열화의 뿌리인 대학 서열을 없애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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