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봄은 더디게 왔다/ 페터 반 게스텔 지음ㆍ이유림 옮김/
돌베개 발행ㆍ399쪽ㆍ1만3,000원
홀로코스트가 일어난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여전히 전 유럽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이 상처는 파시즘 독재와 전쟁, 유대인 학살을 대중이 암묵적으로 동의했거나 최소한 방조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데,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젊은 유럽인들조차 '인간이 인간을 학살했다'는 집단적 유죄의식을 갖는다. 그 맞은편에 유대인의 피해의식 또한 존재한다. 역시 홀로코스트를 겪지 않은 유대인에게도 이 사건은 무의식적 외상으로 작동한다.
버마 민중학살, 리비아 대학살 등 아우슈비츠 규모의 몇 배가 넘는 제노사이드를 뒤로한 채 아우슈비츠는 여전히 '20세기 최대 비극'으로 꼽히며 정형화된 유죄의식과 피해의식을 반복 재생한다. 뛰어난 유럽 작가들도 이 사건을 재현할 때면, 대개 인간 악마성에 대한 고발, 그 고통으로 인한 절규, 참회와 구원 같은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준에 그친다.
1947년 겨울의 네덜란드를 배경으로 쓴 이 소설은 세 아이의 사연을 통해 스테레오타입으로 굳어진 이 희생자-가해자 의식을 깨뜨린다. 주인공 토마스는 전쟁이 끝나고 몇 달 뒤 크리스마스 때 엄마를 티푸스로 잃었고, 유대인인 츠반은 부모 모두를, 츠반의 사촌누나 베트는 아빠를 홀로코스트로 잃었다.
아이들은 홀로코스트의 고통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그 고통을 말하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침묵한다. 이 장면은 토마스 아빠의 무기력한 모습과 베트 엄마의 신경증세보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아이들은 행동을 통해, 고통의 체험은 형언할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세 아이는 비슷한 상처를 가진 제 또래를 만날 때에야 비로소 각자의 아픔을 털어놓는다. 이 소통을 통해 아이들은 친구가 되고 사랑에 눈떠간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추위는 아이들 마음속 풍경 그 자체이지만, 아이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마음의 얼음장이 녹아 내리길 기다린다.
2001년 네덜란드에서 출간된 이 책은 황금연필상을 비롯한 네덜란드 3대 청소년문학상을 석권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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