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상뻬/ 장 자끄 상뻬 지음·허지은 옮김/ 미메시스 발행·344쪽·2만4000원
이유 없이 얼굴이 빨개지고, 재채기가 멈추지 않는 두 소년의 우정을 통해 누구나 가진 콤플렉스를 아름다운 동화로 완성한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 점심때마다 식당에서 마주치는 한 남자의 연애 소식에 각자의 옛사랑을 추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랑베르씨', 자전거포 사장 따뷔랭씨가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속사정을 풀어낸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 장자끄 상뻬의 글과 그림엔 특유의 낙천성과 유머가 넘친다. 지극히 사소한 일화로 삶과 죽음, 인생의 의미를 통찰하는 그의 작품에서 늘 방황하는 우리 모습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꼬마 니콜라> 와 <좀머씨 이야기> 의 삽화가로 잘 알려진 그는 1978년부터 30년 이상 미국의 유명 주간지 뉴요커의 표지 그림을 그려왔다. 1925년 창간 이래 표지에 기사 제목 없이 그림만 싣는 뉴요커는 그림 작가에겐 명예의 전당처럼 여겨진다. 좀머씨> 꼬마>
뉴요커 표지를 장식해온 상뻬의 그림 150여점과 작가의 육성 인터뷰를 엮은 <뉴욕의 상뻬> 가 출간됐다. "파리는 초록인데 반해 뉴욕은 사방이 빨강, 초록, 노랑인 색깔투성이"라고 말하는 상뻬는 파리와 뉴욕을 오가며 뉴욕의 풍광과 뉴요커의 삶에 귀 기울인다. 뉴욕의>
포도주 중개업소에서 일하며 밤마다 풍자화를 그리던 열일곱 살 소년이 훗날 동경하던 뉴요커에 그림을 싣게 된 계기, '랑베르 씨'의 뉴욕 버전인 화집 '뉴욕스케치'가 당시 뉴요커 사장인 윌리엄 숀의 요청이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책 속에 담겼다.
지금도 가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주야장천 앉아서 혼잣말한다는 상뻬. "자 이걸 어쩐다. 음, 자전거 탄 사람은 안 그릴 거야. 그래, 벤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자, 이것도 좀 아닌 거 같아. 나무 아래에 앉은 남자? 그것도 좀 그래." 마음에 들지 않는 화집이 출간되면 한동안 낙오자가 된 느낌에 사로잡힌다는 그다.
천재이기보다 더 많이 노력하는 사람인 상뻬에게는 늙지 않는 감성이 창작의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난 항상 끊임없이 놀랍니다. 비행기 한 대가 지나가는 것을 봤는데, 그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떠 있는 거잖아요. 이런 사실 자체가 재미있고 매력적이지 않나요?"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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