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 직원이 한 일을 일일이 다 어떻게 챙기느냐."
7일 오후 7시쯤 서울 중랑경찰서 형사과장은 전화를 받자마자 언성을 높였다. 이날 서울경찰청 수사과는 중랑서 형사과 강력팀 소속 이모(46) 경위가 2008년부터 대형할인점에서 적발한 절도 용의자 수백명으로부터 돈을 받고 사건을 덮어준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 중이라는 보도자료를 냈고, 경위 확인 차 중랑서에 전화를 했다가 들은 황당한 말이었다.
앞서 중랑서장에게 해명을 듣고자 수 차례 연락을 했지만 감감무소식이었고, 연락이 닿은 다른 과장들은 “서장님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거나 "(중랑서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르는 일"이라며 딴소리 하기에 바빴다.
한 시간 넘게 중랑서 관계자들과 승강이를 하면서 왜 일선 형사가 무려 4년 동안 사건을 뭉개고 돈을 받을 수 있었는지 감이 왔다. 이 사건의 본질은 '내부 비리 방치'다. 이 경위는 4년 넘게 지역의 대형할인점 절도사건을 아무런 제재도 없이 단독으로 처리해 왔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사무실로 절도 용의자를 불러 조사한 뒤 돈을 받고 사건을 무마한 혐의가 확인된 것만 8차례. 현행범을 입건도 하지 않은 절도사건은 무려 314건이다.
이 과정에 지난 4년 동안 수사의 달인인 동료 형사들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게 상식 밖이다. 게다가 한 경찰 관계자는 "동료들은 서울청 수사 착수 전 이 경위의 뇌물수수를 알고 있었고 이 경위는 그 사실을 알고 사표를 내려 했다"고 전했다. 알 만한 사람 다 아는 구조적 비리였다는 얘기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취임 초부터 내부 비리 척결을 강조했다. 잇따라 터지는 고위경찰관들의 비리를 두고 "집안 단속도 못하고 있다"고 자책도 했다. 하지만 이런 반성은 말뿐이었던 것 같다. 일선 형사가 수년간 본분을 망각한 범죄행각을 벌이는 동안 상부기관은 제대로 감찰도 못했고 소속 경찰서는 감추기에 급급했다. 구조적 비리 내지 방조 의혹이 농후한 희대의 독직 사건에 대해 동료 경찰이 그 전모를 제대로 밝혀낼 수 있을지 심히 의심스럽다. ‘가재는 게편’이라는데 경찰이 맡을 수사가 아니다.
채희선 사회부 기자 hsch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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