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전부터 국내 약값 결정과정에 대한 분쟁절차 돌입을 예고하면서 한미 FTA가 앞으로 '만성적인 통상마찰 시대'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존 FTA와는 차원이 다른 한미 FTA의 파괴력과 특히 통상 분야에서 '호전적'인 미국의 태도를 감안하면 하루빨리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7일(현지시간) 미국의 통상전문지 '인사이드 유에스 트레이드'에 따르면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최근 오린 해치 공화당 상원의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미 무역대표부는 한미 FTA 발효 뒤 구성될 '의약품 및 의료기기 위원회'에서 약값의 독립적 검토절차와 관련해 문제제기를 하고, 필요하다면 협정에 따른 분쟁해결 절차를 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우리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내 제약업체와의 협상 등을 통해 결정한 약값에 대해 미국 제약사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통해 재검토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미국 측은 지난달 19, 20일 우리 정부와 가진 이행점검 회의에서도 같은 입장을 피력했으나, 우리 측은 "약값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므로 미국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맞섰다.
정부는 앞으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한미 FTA 협정 규약에 따라 의약품 및 의료기기 위원회 참가는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때문에 국내 보건의료계는 행여 협상 결과에 따라 국내 업체의 약값 결정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미국 제약회사들은 신약 개발 등을 무기로 국내 오리지널 고가약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문제는 비단 약값뿐 아니라 다른 산업에서도 유사한 문제제기가 잇따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한미 양국은 오랫동안 논란이 돼 온 투자자 국가소송제도(ISD)를 FTA 발효 90일 내 서비스투자위원회에서 다루기로 합의했다. 아직 위원회에서 다룰 구체적인 안건은 미정이지만 양측간 치열한 줄다리기가 불가피하다. 한미 FTA 협정문에 따르면 양국은 분쟁해결을 위한 중재패널로 가기 전, 재협의를 위한 1개의 공동위원회와 18개의 분야별 위원회를 두고 있다.
한미 FTA가 이렇듯 만성적인 통상마찰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은 이유는 다자간 무역체제인 세계무역기구(WTO)와 달리 양자간 무역체제인 FTA 하에서는 체결국이 상대국에게 바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한미 FTA 협정은 워낙 광범위해 어디서 분쟁이 돌출할 지 모른다"며 "앞으로는 미국을 비롯해 FTA 체결국들과 상시적 통상마찰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만큼 잦아질 통상분쟁 해결을 위한 협상 노하우와 전문인력이 절실하지만 현실은 크게 미흡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한미 FTA가 발효되면 상시적이고 다양한 측면에서 통상마찰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통상전문가 육성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국내 통상전문가는 현재 100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 통상교섭본부도 "미국, 유럽연합(EU)과의 분쟁해결에 대비해 우리 측이 중재 패널로 내세울 통상전문가를 찾아보니 손에 꼽을 정도였다"며 전문인력이 부족한 현실을 인정한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아직 본격적으로 FTA 관련 분쟁을 다룬 적이 없어 분쟁 과정에서 노하우를 배워가야 하는 처지"라고 우려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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