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밤 10시에서 11시 정도까지 모든 학생을 학교에 잡아두었는데, 그것은 그 도시 학교들의 일반적인 전통이기도 했다. 보충 수업이라 명명된 강제 학습을 들었고, 자율 학습이라 쓰고 타율 학습이라 읽는 시간을 보냈다. 보통 오전 7시 즈음에 학교에 나와서 오후 11시에 집에 가므로 학교에서 머무는 시간은 어림잡아도 14시간 이상이었다. 어떤 현자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14시간을 내리 공부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린 했다. 대한민국의 학생은 산업혁명기 맨체스터 굴뚝 공장의 소년들처럼 공부해야 하니까.
혈기 왕성한 10대 후반 남자들은 어떻게든 뛰어놀아야 했다. 점심, 저녁시간은 물론이고 쉬는 시간 10분을 못 참고 우리는 운동장으로 뛰쳐나가곤 했다. 점심에는 30분 축구를 하고 쉬는 시간에는 농구를 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겨울이면 책상 2개를 붙여놓고 필통을 네트 삼아 탁구를 쳤다. 삼선 슬리퍼가 훌륭한 탁구채가 되었다. 슬리퍼로 회전을 걸어 건너 편 책상에 스매시가 꽂히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느꼈다. 유남규, 김택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난 삼아 했던 내기가 발단이었다. 한게임 이기면 1,000원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10분 동안 많이 잃으면 2,000원 잃었는데, 산술적으로 모든 시간 게임을 해서 계속 진다면 하루에 3만원도 넘게 수중에서 사라진다는 계산이 나왔다. 실제로 그런 친구가 있었다. 판돈이 커진 탓이 컸다. 1,000원이 5,000원이 되고 게임 당 1만 원으로 판이 커졌다. 걸린 돈이 올라가자, 조악하기만 했던 책상 탁구가 눈에 불을 켜고 덤비는 빅게임이 되고 말았다. 공 하나하나에 희비가 엇갈렸다. 책상은 흡사 UFC의 철창처럼 보였다.
돈을 많이 따는 강자들이 나타났고, 심심풀이로 뛰어들었던 녀석들은 열렬한 구경꾼이 되었다. 우리는 승자를 맞추는 놀이를 즐겼고, 거기에도 돈이 모였다. 1,000원, 2,000원씩 모이는 돈이 꽤 쏠쏠했다. 자기가 돈을 건 선수가 지면 화를 내기도 했다. 수업을 제외한 모든 시간은 경마장이나 경륜장처럼 시끄러웠고, 지폐가 녀석들의 손을 타고 돔구장의 제트기류처럼 이리저리 떠다녔다. 돈을 좇아 우리도 이리저리 움직였다. 누군가 돈을 빌렸고, 누군가 돈을 뺐었다. 누군가 돈을 빌려줬고, 누군가 돈을 빼앗겼다. 우리는 이런 영어 숙어에 길들여졌다. 'Show Me The Money'.
돈의 광란이 시작됐다. 누구도 그에게서 도망칠 수 없었다. 땀을 내며 소일거리로 즐겼던 시간은 이제 없다. 경기에 뛰는 선수는 상상을 초월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매순간이 승부차기요, 2사 만루였다. 힘이 센 어떤 녀석을 위해 일부러 지는 아이도 생겼다. 어딘가에서 나지막한 욕설이 들려오고, 모두가 움찔하는 사이에 경기는 이상해졌다. 책상을 붙이고, 필통을 네트로 하고, 슬리퍼로 치던 탁구는 그렇게 구역질나는 도박의 현장이 된 것이다.
혹자는 스포츠와 도박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말한다. 실제 세계 어디든 경기 결과를 두고 배팅을 거는 일은 흔하기도 하다. 미국이나 유럽 등지는 축구나 권투 등에 합법적인 사설 배팅 사이트가 운영된다(레알 마드리드 가슴팍의 로고 'bwin'은 도박 사이트 이름이다). 우리도 '스포츠 토토', '프로토'라는 이름으로 스포츠 복권이 운영된다. 경기 결과나 스코어를 맞추고, 배당률에 따라 돈을 잃거나 따게 된다.
인기 팀의 신진 에이스였던 야구선수, 리틀 마라도나라고 불리던 축구선수, 신인왕 출신의 배구선수는 어쩌다 검은 유혹에 빠지게 되었을까. 분명 그들은 잘못을 저질렀다. 그들은 프로스포츠의 근간을 흔들고 팬을 기만했다. 하지만 신성한 몸의 움직임을 상품화시키고 거기에 한방의 욕망을 덧씌운 건 우리 모두가 아닐까. 모든 종류의 도박은 스포츠를 처절하게 만들고 상처를 준다. 며칠 후 결국 우리는 정학이나 근신 등의 징계를 받았고, 선생님께 엄청나게 맞았다. 부모님이 학교에 왔고, 긴 반성문을 썼다.
팬들은 상처를 받았다. 이제 그들은 어찌 할 것인가. 제발 부탁한다. 'Show Me The Sports.'(스포츠 정신을 보여주세요) 상처받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축구와 야구와 배구를 사랑할 것이니까.
서효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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