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최근 방영하고 있는 사극의 인기가 뜨겁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가상의 왕을 내세운 이 역사 소재 드라마는 첫 회 20% 가까운 시청률로 주목을 끌더니 급기야 40%를 넘어섰다. 시청률만이 아니다. 방송이 끝나면 관련 기사가 각종 포털의 메인 뉴스 란을 뒤덮고, 아역이든 성인역이든 주연배우들의 깨알 같은 일화가 일주일 내내 사람들의 화젯거리다.
물론 필자 또한 '해를 품은 달'이라는 제목의 그 드라마를 즐겨 본다. 그러다 문득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평범한 궁금증인데, '왜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좋아할까? 시청률 40% 이상인 이 드라마의 주 시청 층은 대체 누굴까?' 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일종의 감상으로, 역사를 소재로 하지만 이 드라마는 왠지 시청자에게 어떤 부담감도 주지 않고, 심리적 압박감도 느끼게 하지 않음으로써 성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무엇에 대한 부담감이고, 어떤 압박감이란 말인가? 바로 역사다. 연대기 방식으로 서술된 과거를 줄줄 외워야 하는 따분한 수업시간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지금 여기 나와 당신에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상관해 있어서, 의구심도 품을 수 있고, 비판적인 사고 속에서 현재를 되비춰볼 수도 있는 역사. 그런 역사가 없는 덕분에 '해를 품은 달'을 보며 우리는 어린 연기자들의 로맨스 장면에 기꺼이 마음이 동하고, 유교사회에서는 가능하지 않았을 농담에 키득거리며, 아름다운 남녀 배우의 얼굴과 화려한 의상과 고풍스런 소품들로 꾸며진 화면을 느긋이 눈요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기껏 드라마 잘 보고 무슨 소리냐고, 왜 역사에 대한 의구심이나 비판적 사고 같은 무거운 것을 대중문화에서 찾느냐고 타박하는 말들이 들리는듯하다. 맞다. 하지만 필자의 의도 또한 새삼스럽게 역사의식을 들먹이며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드라마를 평가절하 하는 데 있지 않다. 그보다는 예를 든 사극 유형의 드라마를 위시해 그와 비슷한 출판물, 공연 문화가 봇물 터지듯 폭발력을 발휘하는 요인을 그 안에서 찾아보자는 것이다. 요컨대 그 핵심 요인으로 나는 감상자의 삶에 직접적으로 결부되지 않는 사건의 시간적 격차와 허구성, 역사를 소재로 하되 전체 맥락이 아니라 특정 부분을 사실의 외관과 가상의 내용으로 버무리는 스토리텔링의 경쾌함을 우선 꼽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통문화의 산물을 오늘 우리의 취향이나 판단에 따라 절묘하게 번안해 새롭고 이색적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미장센 효과를 강조하고 싶다. 이런 요인이 문화산업의 흥행 메커니즘과 맞물리면서 역사와 현실에 대해 상대적으로 엄격한 생각을 가진 중장년층의 경계심을 허물고, 독특하게 반짝이는 이미지를 순간순간 내 것으로 즐기고 싶어 하는 젊은 층의 감수성을 파고든다.
199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출판계, 예술계, 대중문화계가 실제와 가상을 넘나들며 지나간 역사를 차용하는 작품들을 내놓고, 학계가 그간 주류 역사 서술에서 간과된 과거의 편린들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구성하거나 재해석하는 연구에 매진해온 일은 새삼스런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그것들 나름대로 망각에 잠긴 시대를 돌이켜 보게 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게 하며, 권력자들의 손아귀에서 짓눌렸거나 떨어져나간 비주류 존재와 미시적인 사물을 지금 여기서 다시 숨 쉬게 한다. 비록 '퓨전문학'이니 '크로스오버 장르'니 '학제 연구'니 하며 일시적인 유행처럼 간주되기도 하지만, 그 같은 문화 생산 활동과 연구는 자체로 역할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한 듯 우리에게 주입된 역사의 내러티브를 달리 볼 기회, 그에 대응하는 현실의 생각과 담론을 발명할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 말이다. 우선은 화사하고 즐거운 이미지들 속에서 그런 다종다양한 사고와 새로운 이야기의 맹아가 더 잘 자라도록 부추기자. 단 드라마를 보는 내 등 뒤에서 힘 센 누군가가 정작 드라마가 아닌 오늘의 삶과 매스미디어 환경을 허구적으로 각색하고 있지는 않은지 촉각을 세운 채로.
강수미 미술평론가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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