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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 MB 언론정책 4년/ (하) 제도와 인식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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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 MB 언론정책 4년/ (하) 제도와 인식이 문제다

입력
2012.03.0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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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부와 정치인은 언론, 특히 방송에 영향을 끼치고 싶어 한다. 방송사 수장은 외압에 맞서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을 지키고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 최우선 가치를 둬야 한다."

지난해 방한한 그렉 다이크 전 BBC 사장이 강조한 이 말은 작금의 방송사 동시파업 사태의 해법을 찾는데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그 자신 정권과의 갈등 끝에 BBC를 떠나야 했던 다이크 전 사장의 이력은 권력에 맞서 정치적 독립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은 그런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웅변한다.

동시파업 사태로 귀결된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언론정책을 바로잡는 첫 걸음은 방송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해온 김재철 MBC, 김인규 KBS 사장의 사퇴라는 것이 언론계와 학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언론인 스스로의 각성과 노력과 더불어, 정치권도 공영방송 사장을 마치 권력 쟁취에 따른 전리품처럼 여기는 '점령군식 언론관'을 버려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다이크 전 사장의 지적처럼 "끊임없이 방송을 손을 넣으려 하는 권력"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이와 함께 명분도 경쟁력도 없는 종합편성채널의 탄생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방송정책이 정치적 이해에 휘둘리는 폐단을 막기 위해 방송통신위원회의 개혁도 필요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어진 방송장악, 독단적 언론정책 시비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대선을 앞둔 지금 근본적인 개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낙하산 사장ㆍ전횡 막을 기구 필요

국내 공영방송 사장 임명 과정은 절차상으로는 정치적 입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듯 보인다. 현행 방송법에 따라 KBS 사장은 이사회의 임명제청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한다. MBC 사장 임명은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 의결을 통해서 이뤄진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정부 여당, 특히 청와대 입맛에 맞는 인물들이 사장 자리를 꿰차는 구조다.

KBS 이사회(여당 추천 7명, 야당 추천 4명) 이사들은 방송통신위원회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방문진 이사(여당 추천 6명, 야당 추천 3명)는 방통위에서 임명한다. 게다가 방통위 상임위원 5명(대통령이 위원장 포함 2명 지명, 여당 1명, 야당 2명 추천)의 임명권도 대통령에게 있다. 방송 지배구조가 일종의 피라미드 형식을 취하고 있고 그 정점에 청와대가 있는 셈이다. 청와대와 집권당이 공영방송 사장을 논공행상하듯 임명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언론특보를 지낸 김인규씨가 현 정부 출범 때부터 유력한 KBS 사장 후보로 거론된 이유이기도 하다. 언론학계에선 보다 독립적 활동이 가능한 별도의 사장 추천기구 설립을 제안하고 있다. 현행 제도를 유지하더라도 이사회의 단순 과반을 넘는 다수의 의결을 통해 사장 제청이나 임명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실 사장 임명 제도를 어떻게 바꾸든 낙하산 논란을 완전히 벗기는 어렵다. 따라서 어느 정도 친정부적인 인사가 임명되더라도 경영에서 전횡을 할 수 없도록 견제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현재 KBS 이사회와 방문진 이사회는 프로그램의 공정성 여부, 프로그램의 양질 유지 점검 등 내부 감독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의 '큰집 조인트' 발언에서 드러났듯이, 절대다수인 여당 추천 이사들이 '낙하산 사장'의 일방통행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기 힘든 구조다.

언론학계에선 오래 전부터 BBC의 트러스트, 일본 NHK의 경영위원회, 독일 ARD의 방송평의회 같은 방송사 내부 감독기구를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왔다. 주정민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현행 이사회는 경영에 대한 관리 감독만하고, 보도와 프로그램의 공공성을 감독할 집행이사회를 별도로 만들어 책임을 묻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의 산업성과 공공성 나눠 고민해야

방송통신 정책을 총괄하는 방송통신위원회의 개혁도 불가피하다. 방통위는 방송과 통신 융합 추세에 맞춰 만들어졌지만 지난 4년을 돌이켜볼 때 사실상 실패작이라는 게 학계와 관련업계의 평가다. 종합편성채널의 무더기 승인과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사)법 공백상태의 장기간 방치로 미디어 생태계 전반을 혼란에 빠뜨렸을 뿐 아니라, 규제와 진흥 역할을 모두 쥔 합의제 기구의 한계 탓에 통신 분야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학계에선 대통령 직속 기구인 방통위가 사실상 정권 방송장악의 도구가 된 점을 반면교사 삼아 새로운 기구를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방송의 공정성을 담당할 기구와 방송통신의 산업 부문을 다룰 기구가 각각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대통령의 최측근이 위원장으로 있었던 방통위는 1990년대 언론 통제의 산실이라 해서 폐지된 공보처보다 더 힘이 센 조직"이라며 "방송을 규제하는 기구가 따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통위가 당분간 존속되더라도 위원장 임명은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방송 공정성에 대한 이해와 함께 통신 산업에 대한 지식을 갖춘 인사가 방통위 수장에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계 한 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신문기자 출신을 KBS 사장에 임명시켜 욕을 먹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신문기자 출신 최시중씨를 방통위원장에 연임을 시켰다"며 "현 정권에서 방송통신 질서가 엉망이 된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고 명확하다"고 비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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