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구 주제는 협상이다. 그중에서도 협상에서 양보를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가에 대한 연구도 하고 있다. 최근에 양보와 관련하여 3가지 흥미로운 사례를 발견하였다.
먼저, 바람직하지 않은 사례이다. 박명기 교수가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에게 한 양보이다. 진보 진영의 후보를 교육감으로 만들기 위한 양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곽 교육감이 '선의로' 2억원을 박 교수에게 제공한 것이 알려졌다. 결국 박 교수는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곽 교육감은 벌금 3,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선거에서 금품을 매개로 한 양보이기에 아름답지 못한 양보가 되었다.
다음으로는 작년 가을부터 정치권에 태풍같은 변화를 몰고 온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양보이다. 지지율이 55%인 안 교수는 9%의 지지율을 가진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직에 더 적임자라며 출마를 양보하였다. 보통의 협상에서는 자원을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많은 파워를 가지고, 파워를 가진 사람이 상대방에게 양보를 요구한다. 그런데, 안 교수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파워를 이용하지 않고 선선히 양보하였다. 이것이 계산된 양보인지는 알지 못한다. 박원순 시장에게 한 양보로 안 교수는 서울시장 후보가 아니라 일약 유력한 대권 후보가 되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일반적으로 비즈니스 협상에서는 양보를 하더라도 마지못해서 하는 것처럼 행동하라고 권고한다.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는 상대방의 첫 제안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선뜻 상대방의 제안을 수락하면, 비록 그것이 선의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은 나를 의심하고 더 많은 양보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텐데 라며 아쉬워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협상자 간에 신뢰가 있는 경우에는 이런 법칙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 신뢰도 있으면서, 파워도 더 있는 사람이 양보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다. 즉 질질 끌지 않고 선뜻 양보하였을 때, 사람들은 더 고마워 하고, 상대방을 더 좋게 평가할 수 있다. 안 교수의 경우가 그러한 예이다. 박원순 후보보다 더 많은 파워를 가지고 있었는 데도 선뜻 양보를 한 것에 대한 진정성에 대해서 사람들이 의문을 품지 않고, 높게 평가하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 알게 된 개그맨 이동우씨와 관련된 양보이다. 이씨는 틴틴파이브의 멤버로 우리에게 웃음을 주던 개그맨이었다. 그런 그가 망망색소변성증이라는 병을 앓다가 시력을 상실하였다. 그런 후에도 연극배우로, 또한 라디오 DJ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장애인이 되어서 방황하던 그를 바로잡아 준 계기가 있었다. 천안에 사는 40대 남성이 그의 사연을 듣고, 자신의 눈을 기증하겠다고 연락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분은 사지를 못 쓰고 가진 것은 눈밖에 없는 근육병 환자였다. 이씨는 결국 안구기증을 거부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하나를 잃고 나머지 아홉을 가진 사람인데, 그분은 아홉가지가 없고 하나만 있는 사람이다. 10원 가진 사람이 90원 가진 사람에게 100원을 만들 수 있도록 양보하는 상황이었으니…" 이동우씨는 그에게서 세상을 보는 눈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영화 '록키'의 대사를 인용하면서, "이기느냐 지느냐, 내가 상대방을 얼마나 때리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많이 맞더라도 얼마나 용기 있게 링 위에서 버텨 내느냐가 중요하다."라고 했다. 즉, 인생에서 성공하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인생을 얼마나 멋지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더 어려운 사람이 양보를 제안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사연이다. 이동우씨 말처럼, 요즘 세상은 90원 가진 사람이 100원 만들려고 10원 가진 사람의 돈을 탐내는 세상인데 말이다. 우리나라의 사회 지도층 인사들도 이렇게 아름다운 양보를 할 수 없을까?
권성우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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