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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호쿠 대지진 1년] <4>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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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호쿠 대지진 1년] <4>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입력
2012.03.0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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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년에 한번 있을 수 있는 일" 도쿄전력의 오만이 낳은 人災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함께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 최악 수준인 레벨7을 기록한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는 시종일관 오만과 비리로 얼룩진 인재였다. 일부 전문가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폭주기관차를 보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후쿠시마 원전은 1960년대 중반 설계 때부터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 시공회사가 부지로 선택한 지역은 해발 20m가량의 고지대였다. 만의 하나 발생할 지 모르는 쓰나미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운영회사인 도쿄(東京)전력은 지대가 높다며 15m 이상 땅을 깎을 것을 요구했다. 원자력 관련 장비들이 바다를 통해 들어오는 만큼 접안을 쉽게 하려는 의도였다. 결국 원전은 해발 5m에 건설됐고, 핵심시설인 원자로 1~6호기는 해발 10m 위치에 들어섰다. 원자로 건물은 도호쿠(東北) 대지진 당시 들이닥친 높이 14.7m의 쓰나미에 맥없이 침수됐다. 예정대로 원전이 건설됐어도 돌이킬 수 없는 방사능 물질 오염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당시 원전부지 지반을 깎을 것을 요구했던 도쿄전력의 전 간부는 “업무를 손쉽게 하기 위한 의도였다”며 사죄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1971년 후쿠시마 제1원전 완공 과정에서도 쓰나미와 강진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속출했다. 당시 원전 안전 검증에 관여했던 기술자는 “규모 9.0의 지진이나 쓰나미 등이 원자로를 파손시킬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건의했으나, 도쿄전력 간부는 “1,000년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 한 사고까지 대비할 필요는 없다”고 묵살했다. 도쿄전력은 국제학술대회에서도 10m가 넘는 쓰나미가 50년 이내에 올 확률은 1%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결국 후쿠시마 제1원전은 지진 규모 8.0, 쓰나미 최대 높이 5m를 기준으로 책정하는 데 그쳤다.

원전사고의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전원공급장치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수차례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36년 전에 이미 원자로 냉각과정에서의 전력공급 상실은 방사능 물질 방출이라는 통제 불능의 상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도쿄전력은 “10m 이상의 쓰나미가 오지만 않는다면 전력이 상실될 이유가 없다”며 무시했다. 도쿄전력 내부에서조차 “원자로 격납용기 내부에 있는 전력공급장치만이라도 고지대로 이전해야 한다”는 건의서를 냈으나 이 역시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도쿄전력이 이런 의견들을 철저히 묵살한 것은 공기업 시절부터 관행처럼 이어져온 간부들의 낙하산 인사와 무관하지 않다. 역대 대다수 사장은 정치권에서 낙점한 인물로 채워졌다. 이들은 이런 사실이 부각될 경우 국민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고, 정권의 부담으로 이어진다고 판단해 철저히 외면했다.

정권의 수혜를 입은 도쿄전력 간부들은 나아가 원전관련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조직적인 입막음을 시도했다. 당시 여당인 자민당에게는 사장 30만엔, 부사장 24만엔, 상무 12만엔 등 매년 직급 별로 정치헌금을 제공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에게는 전력노조측에서 수시로 정치자금을 지원했다. 원전 주변 주민들에게는 마을복지 명목으로 매년 거액의 자금을 지급했고, 원전 관련 학자들에게도 연구비 명목으로 돈을 뿌렸다.

일본의 대표적 사상가인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은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원전 사고 직후 원전이 안전하다고 외치던 교수들은 대부분 전력회사로부터 돈을 받은 인물들”이라고 폭로했다. 그는 “당시 전력회사 돈을 받지 않은 일부 교수만이 원전의 위험성을 강조했으나, 얼마 후 이들도 안전하다는 쪽으로 돌아섰다”며 “이것이 일본 학자의 현실”이라고 분개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 사그라들지 않는 식품공포

6일 낮 도쿄 JR 신바시(新橋)역 앞. 한국의 농협에 해당하는 전농(JA) 주최로 후쿠시마 지역에서 생산한 쌀, 과일 등 농산물 직판 행사가 열렸다. 매일 수십만명이 지나는 곳이지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행사장에서 빈손으로 나온 주민은 “후쿠시마가 고향이라 도움을 주고 싶지만 방사성 물질 오염이 염려스러워 지갑을 열지 못했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1년이 다 됐지만 원전 인근 지역에서 생산되는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방사성 물질의 대기 중 오염은 조금씩 낮아지지만 토양 오염은 갈수록 심해지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현지 주민들을 고려해 농수산물에 대한 오염 기준치를 관대하게 책정하고, 해당 지자체들도 오염된 먹거리에 대한 정보를 숨기기에 급급한 것도 먹거리 불신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일본 정부는 최근 후쿠시마 관내 12개 지자체 2만3,240개 농가가 지난해 생산한 쌀의 세슘 함량 조사결과를 토대로 ㎏당 500베크렐(Bq) 이상 검출된 지역의 쌀은 전량 매입해 시중 유통을 막고 신규 재배도 제한키로 했다. 반면 100~500Bq이 검출된 지역은 자체적인 방사성 오염 물질 제거를 전제로 벼 재배를 허용키로 했다. 지난달 100Bq이하 지역에 한해 재배를 허용키로 한 방침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원전 전문가인 다케다 구니히코(武田邦彦) 주부대 교수는 최근 TV 프로그램에서 “후쿠시마 원전에서 100㎞ 이상 떨어진 이와테(岩手)현 이치노세키(一関)시의 일부 쌀도 세슘에 오염됐다”고 했다가 해당 지자체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해당 지자체는 오염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방사성 농도 측정은 거부하고 있다. 다케다 교수는 “정부와 지자체의 소극적인 태도로 해당 지자체 농산물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며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이 불안감을 해소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 후쿠시마 제1원전 현재 상태는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는 지난해 12월 후쿠시마 제1원전 원자로가 섭씨 100도 이하인 냉온 정지상태에 도달했고, 사고도 사실상 수습됐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는 정치적인 선언일 뿐,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전문가들은 겨우 급한 불을 껐을 뿐이며 수습단계에 들어서려면 수십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3월11일 후쿠시마 제1원전을 덮친 쓰나미로 원자로 1~6호기의 전원 공급이 끊기고 이어 1~3호기의 방사성 물질을 감싸고 있는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멜트다운)이 일어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됐다. 또 수소폭발로 원자로를 덮고 있는 격납용기마저 파괴돼 대량의 방사능 물질이 외부로 퍼져나갔다. 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은 지난해 6월 사고 원전에서 7.7경(경은 1조의 1만배) 베크렐(Bq)의 방사성 물질이 유출됐고, 반감기가 30년인 세슘 137도 1.5경Bq이 방출됐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난 2월 일본 기상청은 대기에 방출된 세슘 총량을 4경Bq로 추정했다. 이는 2차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500개가 넘는 분량이다.

지난해 연말을 기점으로 원자로는 냉온 정지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지금도 매일 시간당 7,000만Bq이 유출되고 있다. 원자로의 냉온 정지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물을 뿌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수도 20만톤을 넘었다. 일본 정부는 일부 저농도 오염수를 바다에 그대로 내보려고 했으나 국제사회의 반발이 심하자 1,000여개의 저장탱크에 보관하고 있다. 하지만 저장탱크를 두는 보관장소도 포화상태에 달해 최악의 경우 바다에 흘려 보내거나 주변 땅에 버려야 하는 상황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220㎞ 떨어진 도쿄 등 수도권 주민들도 원전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바람이 많이 불거나 비가 내리는 날에는 일시적으로 도쿄의 방사능 수치가 올라가 3,500만 수도권 주민을 긴장시키고 있다. 대기를 통해 바다로 떨어진 방사성 물질로 인한 해저 오염도 심각하다. 야마자키 히데오(山崎秀夫) 긴키대 교수는 최근 도쿄만 해저에서 1㎥당 최대 1만8,242Bq의 방사성 세슘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는 일본 최대 규모의 호수인 비와호에서 주변국 대기 핵실험 영향으로 검출된 세슘의 최대 25배에 달한다.

야마자키 교수는 “앞으로 1, 2년간 세슘 유입이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쿄=한창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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