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회 중세 유럽에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기 보다 힘들다'는 통념이 있었다. 걸인은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였고, 부자는 통행세를 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식이다. '통행세=적선'이었으니 걸인이 인구의 20%에 달했다. 1478년 독일에선 직업으로 인정, '구걸 면허제도'도 생겼다. 부작용이 커지자 1535년부터 프랑스가, 1540년부터 영국이 구걸행위에 대해 벌금과 사형으로 단속을 시작했다. 근대사회 이후엔 상식과 질서에 맡겨놓았다.
■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구걸행위 금지법'이 통과됐다. 개정 경범죄처벌법은'공공장소에서 구걸하여 타인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하는 행위'는 10만원 이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을 매기도록 했다. 어린이 노약자 장애인 등에게 구걸을 시켜 돈을 뜯는 행위만 아니라 '자발적 구걸행위'도 대상이다. 경찰은 '통행방해나 자유침해 쪽으로 제한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아무래도 군사독재 시절 삼청교육대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 미국의 워싱턴D.C.는 '걸인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1993년 6월 D.C. 당국은 '구걸행위금지조례'를 발표했다. 걸인이 너무 많아 수도의 이미지가 망가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조례는 '행인들의 몸에 손을 대는 등 거친 구걸행위, 지하철역 버스정류소 건물입구 등에서 동냥행위'를 할 경우 벌금ㆍ금고ㆍ노역을 부과했다. D.C.는 단속대상을 구체화했음은 물론 '앞으로 90일 동안'이라는 조건을 명확히 했고, 그나마 법이 아닌 조례였다.
■ 유럽 일부 지역에 '구걸행위 금지법'이 있기는 하나 실제 목적은 집시나 불법이민자 등을 단속하는 방편으로 한시적ㆍ예외적으로 적용한다. 10여년 전 미국 연방고등법원은 뉴욕주(州)의 '공공장소 구걸행위금지법'에 위헌 판결을 했다. 모금행위와 구걸행위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게 중요한 이유였다. 빈곤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멀리하고 구걸행위에 벌금을 매긴다며 법까지 개정했다니 상식 밖이다. 시행은 내년부터라니 그 사이 빨리, 다시 개정해야 한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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