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중국, 소련과 군사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 일본과는 수교를 맺었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한국은 한미동맹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사회주의 미수교국과 수교를 추진한 북방정책 역시 실패했다고 가정해 보자. 또한 냉전이 사회주의권의 승리로 끝나고 한국만이 동북아시아에서 유일한 자본주의 국가로 남아있다고 상정해 보자. 간단히 정리하면 북한의 남방정책이 성공해 한국은 군사적으로 지원받을 동맹도 없고, 북한을 위시한 적대적인 사회주의 국가에게 포위당한 상태가 된 것이다. 이 경우 현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한국의 최고 국정책임자라면 어떠한 안보적 결정을 내릴까.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정책을 지지할까. 많은 답을 상상할 수 있겠지만 군사적으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고립 상황에서 가장 개연성 높은 답은 핵무장일 것이다.
이처럼 가상의 논리 게임을 한 이유는 북한 핵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서다. 필자는 북한이 왕조체제를 수립하고, 국민들의 생활고도 해결하지도 못하며, 인권문제와 독재체제를 가지고 있는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국가라고 생각한다. 즉 북한을 옹호할 생각이 전혀 없다. 하지만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념과 북한체제에 대한 선호를 떠나서 정말 솔직하게 그 문제의 근원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특히 2월 말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3차 북미고위급회담 합의와 함께 6자회담이 재개될 희망이 보이는 상황에서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보다 솔직한 생각들이 개진되어야 한다.
북한이 핵을 갖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어 왔다. 김일성 왕조의 정권 유지를 위하여 국내용으로 핵을 보유한다는 의견과, 대남 및 대미 협상용으로 협상에서 더 많은 것을 뜯어내기 위해 핵을 보유한다는 의견, 남북한 군사균형이 남쪽에 유리하게 무너진 상황에서 값비싼 재래식 무기가 아닌 한 두 발로 군사균형을 복원할 수 있는 핵무장을 했다는 의견, 그리고 미국이 불량 국가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체제 전환시킬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핵을 갖게 되었다는 의견 등이 있다.
이러한 주장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각 주장에 따라 해결 방식이 달라질 수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그것은 북한 정권이 현 국면이 자신들에게 매우 불리하고 또 위협적이라는 불안감, 그리고 고립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용으로 핵을 갖는 것도 정권유지에 불안감을 나타내는 것이고, 남한과 미국에 대응하여 핵을 갖는 것도 외부 침공 시 자동 개입하는 응원군이 없는 상황에서 불안감을 표시한 것과 다름이 없다.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 유사시 자동군사개입을 한다는 약속은 실효성을 상실한 지 오래다. 협상용으로 핵을 가진다는 주장도 핵 말고는 강력한 협상 수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북한 핵문제 해결은 북한이 왜 이렇게 자신들에게 불리하고 불안한 상황이 조성되었다고 생각하는지를 북한의 입장에서 솔직히 생각해 볼 때 그 실마리가 손에 잡힐 것이다.
글 처음의 가상 논리게임에서 감을 잡았겠지만 북한 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노태우 정부 당시 절반의 성공을 거둔 북방정책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은 한민족공동체 단계를 거친 남북통일과 그를 통한 유라시아 대륙으로의 진출이 최종 목표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북방정책은 한미동맹과 미국의 핵우산을 유지한 채 한국이 사회주의 미수교국과 수교를 하는 수준에서 그쳐버렸다. 즉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직전 우방과 함께 북한을 에워싼 상태에서 북방정책이 끝나 버린 것이다. 북한은 노태우 정부의 7ㆍ7 선언이 제시한 자유진영 국가와의 수교, 특히 미국, 일본과의 수교를 달성하지 못했고 러시아, 중국과의 군사적 동맹관계도 잃어버렸다. 장기판에서 차와 포를 다 잃고 포위망이 좁혀지자 결국 핵무장이라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추론해 본다.
이러한 논리에서 볼 때 북한 핵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바로 북한이 미국 일본과 수교하고 해양으로 진출하는 남방정책을 허용해 궁극적으로 북한을 개혁, 개방시키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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