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
필경에는 하고 넘어가야 하는 얘기가 있다
무거운 안개구름이 밀려들어
귀밑머리에 젖어도
한번은 꼭 해야만 되는 얘기가 있다
잠든 나귀 곁에 앉아서
나귀의 귀를 닮은 나뭇잎으로
밤바람을 깨워서라도
그래서라도 꼭은 하고 싶은 그런 얘기가 있다
* * *
시인은 무엇을 얘기하려는 걸까요? 시에는 당신에 대해 생각한 내용은 있지 않고 간절함만 있어요. 시가 짧아서 이야기 못했나? 시가 지금의 열 배가 되었어도, 필경 하고 넘어가야 할 그 얘기가 무언지 들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나는 당신 생각을 했어요, 하고 있어요, 내내 하게 될 거예요. 이 말의 되풀이 말고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 말고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어요? 롤랑 바르트의 설명에 따르자면 이런 것. “매혹을 묘사한다는 것은, 결국 ‘난 매혹되었어’라는 말을 초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금이 간 레코드마냥 그 결정적인 말밖에 되풀이 할 수 없는 언어의 맨 마지막에 이르면…”(‘사랑의 단상’) 시인의 시집을 펼치니 김명인 시인의 시 한 줄이 제사(題辭)로 적혀 있습니다. “어느덧 나는 내 소용돌이 안쪽으로 떠밀려 와 있다”(‘침묵’). 바로 이런 거죠. 마음 어디께 소용돌이로 남아 나를 고요한 반복 속으로 휘몰아가는 당신 생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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