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한동안 국제 모터쇼를 찾지 않았다. 작년 9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참석한 게 무려 8년만의 나들이였다. 그러던 정 회장이 제네바모터쇼를 다시 방문했다. 6개월만의 유럽방문이자 모터쇼 참관이었다.
자동차회사 오너가 모터쇼에 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업계에선 정 회장의 잇따른 모터쇼 방문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제 모터쇼는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의 제품이 한 눈에 비교되는 자리다. 좋은 자동차는 찬사를 받지만 그렇지 않은 차는 망신을 당하기 십상이다. 정 회장이 여기에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는 건 그만큼 현대ㆍ기아차에 믿음이 생겼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 회장은 제네바 일정 내내 자신감을 드러냈다. 6일(현지시간) 밤 유럽 딜러들과 만찬에서 그는 "자동차를 700만대 만들어 판다는 일은 결코 하루 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유럽 법인장 회의에서 차가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다. (회사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대로 차를 만들고 판매는 딜러들에게 맡기겠다"면서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좀처럼 하지 않던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정 회장은 기아차 수석 디자이너인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의 두 손을 꼭 쥐고는 "(당신의) 디자인에 대해 모두가 너무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참석자는 "(정 회장의 자신만만한 태도는) 확실히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유럽 내에서 현대ㆍ기아차는 다크호스 단계를 이미 뛰어넘었다는 평가다. 시장조사기관 JATO다이내믹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차는 유럽에서 전년대비 11% 늘어난 43만8,000여대, 기아차는 12% 늘어난 29만2,000여 대를 팔았다. 거의 모든 비유럽(미국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마이너스의 늪에 빠진 상황에서, 현대ㆍ기아차는 독일 명차 3총사인 폴크스바겐(10%) BMW(9%) 메르세데스-벤츠(1%)보다도 높은 판매신장세를 기록했다. 올 들어서도 이런 추세는 계속돼 1~2월 누적 판매량에서 현대차는 24.5%, 기아차는 26.8%에 달하는 폭발적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달라진 위상을 반영하듯, 정 회장은 상복도 터졌다. 이날 이탈리아의 유명 자동차 전문지 로부터 '2011 글로벌CEO'에 선정된 것. 토마쏘 토마씨 인터오토뉴스 대표는 "단호한 결단력과 공격적 투자로 꾸준히 품질 향상을 추진했으며 그 결과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바꾼 점을 높게 평가했다"고 밝혔다.
현대차가 글로벌 메이커로 도약한 건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자동차 회사들이 파산위험에 직면하고 일본 도요타가 리콜 후유증에 빠진 사이 현대차는 대대적 투자와 마케팅에 나서 결국 시장도약에 성공했다.
주변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정 회장은 이번 유럽재정 위기를 통해 또 한번 반전을 모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을 건너 뛰고 반년 만에 유럽을 다시 찾은 것도 그런 맥락이란 평가다. 실제로 그는 이날 유럽 생산ㆍ판매 전략 회의를 진행하면서 "유럽에서 길을 찾으면 글로벌 시장의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다. 독창적이고 과감한 전략으로 시장을 선점하자"고 강조했다.
제네바(스위스)=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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