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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重 영도조선소 분규타결 4개월 지났지만/ 멈춘 크레인 텅빈 도크…상처뿐인 조선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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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重 영도조선소 분규타결 4개월 지났지만/ 멈춘 크레인 텅빈 도크…상처뿐인 조선1번지

입력
2012.03.0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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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움직여야 할 대형 크레인은 녹슨 채 멈춰 있다. 배가 있어야 할 도크(야외 작업장) 3개는 텅 비었다. 조선소 치곤 작은 규모(25만여㎡)임에도 황량함 마저 든다. '대한민국 조선1번지'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의 현재 모습이다.

사측의 정리해고, 이에 맞선 노조의 총파업, 그리고 지상 86㎙ 높이의 크레인에서 무려 309일 동안이나 계속된 김진숙씨(민주노총 지도위원)의 농성.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한진중공업 사태는 '희망버스'를 통해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정치권이 중재에 나서면서 마침내 작년 11월10일 극적 노사합의에 도달했다.

그 후 4개월. 하지만 영도조선소에 달라진 것은 없다. 개점휴업 상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2008년9월 이후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수주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작년 유럽에서 4,700톤급 컨테이너선 4척의 건조의향서(LOI)를 받았지만, 파업으로 인해 2억5,000만 달러짜리 본 계약 체결에는 실패했다. 회사 관계자는 "선주 입장에선 제때 선박을 인도받는 게 가장 중요한데 파업으로 납기가 불투명한 조선소에 발주할 선주는 없을 것"이라며 "모든 것이 막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감이 없다 보니 영도조선소 생산직 근로자 703명(정규직) 중 480명이 지금 유급휴직 중이다. 나머지 근로자 223명도 일부 특수선 건조와 시설 보수 등으로 소일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해양경찰과 해군용 경비정 등 방산물량은 일부 돌아가고 있지만 워낙 규모가 적어, 출근한 작업자의 10% 정도만 투입될 정도다.

근로자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한 직원은 "유급휴직자중 상당수는 잔업수당을 받지 못해 월급이 반토막나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그나마 지금 같아선 언제 복귀할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리해고자들의 복귀도 난항이 예상된다. 작년 11월 노사합의에 따르면 정리해고자 94명이 1년 내 재취업하기로 되어 있지만, 지금 상태라면 복귀해도 일이 없어 그냥 쉬어야 할 판이다.

그 사이 노조도 둘로 갈라졌다. 지난 1월11일 제2노조(한진중공업 노조)가 설립돼 74%(523명)의 조합원이 기존 노조(전국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에서 이탈했다. 기존 노조의 강경 투쟁 노선에 조합원들이 외면한 결과다. 기존 노조의 한 관계자는 "과반수 조합원을 확보한 새 노조가 사측과 교섭에서 주도권을 갖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소수 노조도 사측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 노노 갈등 가능성도 예상된다.

일각에선 "회사측이 정말로 영도조선소를 살릴 의지가 과연 있는가"라는 의심을 놓지 않지만, 회사측은 "영도조선소를 포기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입장이다.

지난달 27일에는 조남호 회장이 텅 빈 도크에서 그룹 사장단 및 간부회의를 주재하며 '필사즉생(必死則生)'의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경영위기를 극복하고 조속한 회사 정상화를 이루어 내 반드시 대한민국 조선1번지의 위상을 되찾을 것"이라고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한진중공업측은 ▦축구장 넓이의 10배가 넘는 세계 최대의 도크를 보유한 필리핀 수빅조선소에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탱커, 벌크선 등을 건조하고 ▦영도조선소에선 중소형 특수선박 위주로 건조하는 쪽으로 이원화 전략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전세계 조선시장의 가장 큰 손인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의 선주들이 재정위기 영향으로 발주를 크게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 등 대형 조선소들은 꾸준히 수주를 받는데도 유독 한진중공업엔 주문이 끊긴 건 '장기 파업'의 딱지가 붙어 있어 신규 선박 수주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회사 고위관계자는 "수주를 받아도 10개월 뒤에 작업이 들어가는 만큼 올해 조업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작년보다 적자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긴 갈등과 진통 끝에 찾아온 평화. 하지만 평화 보다 더 중요한 정상화는 오지 않았다는 것, 승자 없이 모두에게 상처만 남겼다는 게 사측이든 노측이든 공통된 생각이다. 한 근로자는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는 이 답답한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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