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정(40ㆍ사법연수원 29기) 인천지검 부천지청 검사가 지난 5일 서울경찰청에 제출한 A4용지 1장 반 분량의 서면진술서에는 박 검사가 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의 남편인 김재호(49ㆍ연수원 21기)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와 통화한 내용이 비교적 상세하게 담겨 있다.
진술서 내용 중 박 검사가 후임이었던 최영운(45ㆍ연수원 27기) 대구지검 김천지청 부장검사에게 김 판사의 발언을 전했다는 부분도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경찰 일각에서는 이번 수사가 박 검사에 대한 참고인 조사 이후 김 판사와 최 검사에 대한 조사로 일파만파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기소 청탁 파문의 발단은 일본 자위대 행사에 참석했던 나 전 의원을 친일파라고 쓴 글을 인터넷에 올린 네티즌을 나 전 의원 측이 2005년 12월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사건이다. 당시 서울서부지검 소속이었던 박 검사에게 최초로 배당됐으나 그가 출산휴가를 가면서 최 검사에게 재배당됐다. 2006년 1월 이 네티즌을 기소해 달라고 청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 판사는 당시 서울서부지법 판사였다.
6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박 검사는 진술서에서 김 판사의 발언을 기소 청탁으로 받아들였다는 식의 본인의 판단을 밝히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박 검사는 김 판사가 전화를 걸어 자신에게 전한 '부탁'의 내용을 적시했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박 검사가 기술한 김 판사의 발언은 정황상 '기소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만한 내용"이라고 전했다.
경찰은 일단 박 검사에 대해 추가 조사를 실시하기로 사실상 방침을 정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박 검사가 진술서를 제출했으나 일부 표현이 모호하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어 서면이든 출석이든 추가로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 2일부터 휴가를 내고 가족과 여행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 박 검사가 복귀하는 8일 이후 조사 일정을 조율할 방침이다.
박 검사 조사 이후에는 김 판사, 최 검사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해 보인다.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박 검사가 김 판사의 발언을 최 검사와의 업무 인수인계 과정에서 전했는지 확인하려면 최 검사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김 판사와의 대질심문도 필요하다면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박 검사가 진술서에서 밝힌, '검찰에서 기소해주면 그 다음은 법원에서 알아서 하겠다'는 요지의 김 판사의 발언은 논란의 소지가 크다. 이런 발언은 김 판사보다 사법연수원 8기수 후배인 박 검사의 입장에서는 부탁이나 청탁을 넘어 압력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김 판사는 지난해 11월 경찰 서면조사에서 "박 검사에게 전화는 걸었으나 기소 청탁은 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에 박 검사가 상반되는 진술을 내놓았기 때문에 추가로 사실을 확인할 필요성이 생겼다.
김 판사 추가 조사와 함께 최 검사 조사 필요성까지 제기된 마당에서 경찰의 고민은 깊어지는 분위기다. 박 검사가 진술서에서 밝힌 내용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최 검사 역시 기소 청탁을 전달받았는지에 대해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판사의 기소 청탁이 사실로 드러나더라도 그를 징계할 근거가 없다는 것도 맹점이다. 법관징계법은 '징계 사유가 있는 날부터 3년이 지나면 징계를 청구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판사가 박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시점은 2006년 1월이니 징계 시효를 넘겼다. 다만 판사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한 데 대한 도덕적 책임론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박 검사의 진술 내용에 대해 나경원 전 의원 측은 일단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나 전 의원은 이날 "박 검사의 일방적 진술일 뿐"이라며 "나는 정치인이고 남편은 공직자라서 일일이 대꾸하는 것도 모양새가 안 좋아 보이니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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