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대 3학년 A씨는 세미나 할 곳이 마땅찮으면 학교 앞 은행 점포를 자주 이용한다. 학생들을 위한 세미나실이 마련돼 있는데다 체크카드 한 장만 있으면 시설 이용이 공짜이기 때문이다. 공부가 싫증나면 점포 내 미니카페로 옮겨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도 있다. 청바지를 입은 20~30대 매니저(지점장급)가 예ㆍ적금 등 은행 업무도 도와준다.
KB국민은행의 대학생 전용점포 ‘락스타(樂star)’존의 모습이다. 2010년 7월 취임한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이 젊은 고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면서 탄생했다. 개설 초기만 해도 “장사가 되겠느냐”는 주변의 우려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어 회장은 3, 4년간 적자를 감수할 생각으로 점포 확장을 밀어붙였다. “젊은 은행 이미지를 강화하고 미래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어서 장기적으로 이득일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작년 초 숙명여대에서 시작된 락스타존(눈꽃존)은 현재 전국 42개 대학으로 확대됐다.
그런데 의아한 건 어 회장의 출신교이자 자신이 총장까지 지낸 고려대에는 락스타존은커녕 구내 출장소 하나 발붙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려대에선 1996년 진출한 하나은행이 16년째 운영자금 관리와 학생증 카드발급 업무 등을 맡고 있다.
그렇더라도 추진력 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어 회장의 성격을 감안할 때 하나은행을 내쫓고 국민은행 점포를 내기 위한 시도에 나설 법도 하건만, 그가 안암골 문을 두드린 흔적은 아직 없다. 고려대에 입점만 하면 어 회장의 경력과 맞물려 홍보효과도 클 텐데 사실상 하나은행의 독주를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에선 이런 배경에 어 회장과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끈끈한 관계가 숨어 있다고 분석한다.
김 회장(61학번)은 어 회장(63학번)의 고려대 경영학과 2년 선배. 2003~2006년 고려대 총장으로 재직하며 ‘CEO형 총장’을 표방했던 어 회장은 기업과 은행, 단체 등에서 4,700억원의 발전기금을 모아 한국대학 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당시 어 회장의 모금 활동에는 김 회장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 2003년 하나은행장이던 김 회장은 학교발전기금 1억원과 장학금 500만원을 사비로 내놓는 등 꾸준히 어 회장을 도왔고, 하나은행은 이와 별도로 고려대 이공대 건물을 짓는데 80억원을 기부했다.
김 회장은 2007년 3월 총장직에서 물러난 어 회장을 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로 임명하기도 했다. 어 회장에게 김 회장은 단순한 학교 선배를 넘어 든든한‘스폰서’이자, 금융지주에 첫발을 내딛게 해준 ‘후견인’이었던 셈이다. 두 회장의 ‘역사’를 잘 아는 금융계 인사는 “어 회장이 승부사이고 욕심 많은 CEO이긴 하지만, 그간 김 회장한테 도움을 많이 받아 와서 하나금융 영역만큼은 침범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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