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제 수업 전면 시행에 따라 교육당국이 각종 토요프로그램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새로 온전한 휴일이 된 토요일만이라도 학생들이 학업경쟁에서 벗어나 원하는 스포츠로 땀을 흘리고, 다양한 문화ㆍ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사회적 배려인 셈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좀 썰렁하다. 인터넷 기사에 붙은 한 학생 댓글은 "주5일제 누가 찬성했나요. 토요 강제 자율학습은 그대로고 평일 수업시간만 늘었다. 방학도 짧아지고…ㅠㅠ"라는 탄식이다. 또 다른 댓글은 "주5일제, 만세! 일요일에 힘들게 몰아서 가던 학원을 토요일에 나눠갈 수 있게 됐단다. 울 엄마 말씀…쩝"이라고 했다. 요컨대 토요일에 놀기는 애시당초부터 글러먹었다는 냉소인 셈이다.
주5일제 수업으로 당장 부모가 토요일에도 일을 하는 맞벌이 가정 등의 어린이 돌봄서비스 제공이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전국의 토요 돌봄교실 운영 초등학교 수를 지난해 1,050개교에서 이달 말까지 5,225개교로 늘리는 대책을 부랴부랴 마련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이보다 더 심각한 게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ㆍ고등학생들에게 토요일이 또 하나의 '사교육 지옥'으로 전락할 가능성이다.
교과부가 학교 내에 마련하고 있는 토요프로그램은 방과후학교부터 '토요 스포츠데이', 문화예술동아리 등에 이르기까지 잔칫집 뷔페식단처럼 다채롭다. 기대대로라면 학생들은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다양한 지식과 스포츠, 취미와 문화예술활동을 즐길 수 있게 된다. 학교 외에도 지자체나 사회단체가 관광과 봉사활동, 또는 체험활동을 엮은 프로그램들을 활발히 마련하고 있어 학생들이 토요일을 즐겁고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는 토대는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학생 다수가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토요일을 즐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네티즌들의 냉소처럼 헛된 꿈에 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벌써부터 기승을 부리고 있는 사설학원들의 토요일 보충학습 강좌 마케팅은 그런 우려를 짙게 한다.
그 동안 격주 휴업체제에서 학원들의 토요일 강좌는 드문 편이었다. 하지만 새 학기 시작부터 대부분의 학원들은 영어ㆍ수학 등 '토요 맞춤형 강좌'를 개설해 수강생을 끌어 모으고 있고, 일부 기숙학원들은 금요일 밤에 '입소'해 일요일 밤에 나오는 주말 특별반 운영을 시도하고 나섰다는 소식이다. 첫 휴업일이었던 지난 3일 학교 토요프로그램을 이용한 학생이 전체의 8.8%에 불과했다는 통계는 토요일이 학생들에게 건강하게 쉴 수 있는 날로 자리잡는 게 결코 쉽지 않은 문제임을 새삼 보여준다.
어른들이 진지하게 나서 학생들에게 새로 휴일로 주어진 토요일이 '사교육 지옥'으로 전락하는 걸 막아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일주일에 단 한나절만이라도 과중한 학업부담과 컴퓨터 게임에 찌든 자녀들이 맘껏 힘차게 뛰어 놀고 건전한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주말 한나절 공부 안 시키기'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제안하고 싶다.
우선 학부모들이 자녀 학습에 대한 열의를 조금 식히는 게 기본 전제다. 우리 아이는 축구클럽에 나가는데, 이웃집 아이는 주말 학원특강에 나가는 식으론 경쟁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밤 10시 이후 학원 심야교습과 마찬가지로 토요일 학원교습도 제한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다들 건강하게 즐기는 분위기라면, 아무리 유별난 부모라도 인터넷강좌나 과외교습까지 시키며 자녀에게 공부를 강요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스포츠든 예능이든, 체험관광이든 건강하게 즐긴 토요 활동상황을 입시에 반영하는 것도 방법이다. 학기당 10시간 정도를 최소 시수로, 성취도는 말고 참여 여부만 따지는 정도의 틀을 갖추자는 것이다. 이게 학원 영업을 방해하는 반(反)시장적 발상이고, 학생들의 자유로운 학습권을 빼앗는 과격한 생각일까?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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