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란 핵 문제에 대한 공동의 해법을 찾는데 실패했다. 두 정상은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외교적 수사로 포장된 일치된 의견을 내놓았으나 내용에서는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과거 정상회담처럼 결렬에 가까운 갈등이 노출되지 않은 게 그나마 성과로 평가된다. 두 정상은 지난해 5월 백악관 정상회담 언론회동에서 국경선 문제에 대한 이견 때문에 시선도 마주하지 않은 채 냉랭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날 두 정상은 눈을 마주치고 여러 번 악수를 나누는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지만, 분위기는 여느 정상회담과 달리 무거웠다.
회담에서 네타냐후는 미국이 이란 해법의 새로운 일정을 제시할 것을 기대했고 오바마는 이스라엘이 이란 군사옵션을 유보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회담 뒤 오바마는 이란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언급하며 평행선을 달렸다. 오바마는 "이란 문제 해결의 최적 방안이 외교라는데 의견을 같이 했으며 미국은 안보의 경우 언제나 이스라엘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결국은 군사옵션을 선택하기에 앞서 외교적 해법과 경제 제재가 효과를 낼 시간을 줘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네타냐후는 "이스라엘과 미국은 함께 한다"며 오바마의 발언을 긍정하는 듯했으나 이내 "이스라엘은 외부 위협에 방어할 권리가 있으며 우리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란이 자국 운명에 위협이 된다면 미국 판단에 개의치 않고 스스로 행동에 나서겠다는 이스라엘 고유의 입장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은 것이다.
네타냐후는 정상회담 수시간 뒤 미국ㆍ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 연례총회에서 보다 솔직한 생각을 드러냈다. 그는 "외교와 경제제재가 성과를 내기를 기다려왔으나 더는 기다릴 여유가 없다"면서 "이스라엘의 총리로서, 나는 국민이 절멸의 어둠 속에 살도록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오바마가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을 자제시키려고 애쓰는 사이, 네타냐후는 이란에 직접 경고를 가한 양상이다.
미 당국은 네타냐후의 방미에 앞서 이란 군사공격의 무모함과 그 파장을 공개 경고했지만, 네타냐후는 개의치 않는 행보를 계속했다. 그가 정상회담 선물로 오바마에게 고대 페르시아(현재 이란)에서 발생한 유대인 학살 음모 이야기를 기록한 히브리어 성서 '메길라'를 선물한 것도 상징적이다. 네타냐후는 "2,500여년 전 그 때도 지금처럼 (이란은) 우리를 말살시키려 했다"며 이스라엘이 이란 핵에 갖는 위기감을 오바마에게 전달하려 했다.
네타냐후는 그러나 이란의 핵개발 상황에 대한 미국의 판단에는 동의했다. 그는 "이란 공격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는데 이는 "이란이 핵무기 제조 결정을 아직 내리지 않았다"는 미국의 입장과 일치하는 것이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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