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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국내 첫 건축다큐영화 '말하는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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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국내 첫 건축다큐영화 '말하는 건축가'

입력
2012.03.0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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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진 옥상에서 자라는 등나무는 몇 년 후 아이들을 위한 근사한 그늘을 만들어줄 것이다. 지난해 11월 개관한 김해 기적의 도서관은 '무주 프로젝트'와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로 대표되는 건축가 고 정기용(1945~2011)의 예순 여섯 평생의 유작이 되었다.

많은 건축가들이 도시의 랜드마크를 지으려 경쟁하는 사이, 건축의 본질인 사람의 삶을 성찰하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임을 실천했던 건축가. 언뜻 고루하고 새로울 것 없어 보이지만 그는 공간과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관계에 주목한 윤리적 건축을 추구했다. 건축가 승효상씨는 "건축가가 누구한테 봉사해야 하는지를 실천적으로 보여준 분"이라고 평한다.

'감응의 건축가'로 불린 정씨의 생애 마지막 1년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가 8일 개봉한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국내 첫 건축 다큐멘터리다. 정씨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함께 돌아보며 듣는 그의 사유가 한 축이라면, 그의 건축 세계를 아우른 전시 '감응: 정기용 건축'(2010년 11월~2011년 1월, 일민미술관)의 준비 과정이 또 다른 축으로 다큐를 이끈다.

2005년 대장암 판정 후에도 후학 양성과 전시 등으로 분주한 그의 태도는 의연하다. 항암 치료 부작용으로 성대결절까지 왔지만 그는 거칠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건축가는 한 시대를 걱정하는 사람이자 한 사회의 모습을 지적하는 사람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막다른 골목에 있다. 그 기로에서 이런 건축의 방향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무주 구천동 어르신을 위한 면사무소 내 목욕탕과 주민들이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공설운동장의 등나무 스탠드, 시간이 은근히 스며든 춘천 자두나무집 등이 차례로 소개된다. 평생 실비만 받고 공공 건축을 설계한 그는 정작 자신의 집을 짓지 못했다. 다가구 빌라에 월세로 살면서 발치에 머무는 저녁 해의 온기에도 감사할 줄 아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지난해 3월 그는 자신이 이끈 기용건축 직원들을 모아놓고 마지막 말을 남긴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나무도, 바람도, 하늘도 고맙고 공기도 고맙고,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정 감독이 아이폰으로 급하게 촬영한 이 장면은 인간 정기용의 삶을 압축해 보여준다. 6일 후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건축은 우리 곁에 남아 깊은 울림을 준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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