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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다큐영화제 대상 '달팽이의 별' 이승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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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다큐영화제 대상 '달팽이의 별' 이승준 감독

입력
2012.03.0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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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안방 형광등을 교체한 뒤 "성공했네"라며 서로를 껴안는다. 보통 사람들이야 대수롭지 않은 일이겠지만, 이 부부에겐 특별하기만하다. 남편 조영찬씨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시청각장애인이고, 아내 김순호씨는 척추장애를 지녔다. 아내는 남편의 눈과 귀가 되고, 남편은 아내의 쉼터 역할을 한다. 달팽이처럼 촉각에 의지해 느리게 일상을 살아가는 남편에게 아내는 별 같은 존재일 수밖에.

다큐멘터리 '달팽이의 별'은 그렇게 서로 버팀목이 되어주며 살아가는 이 부부의 모습을 차분한 시선으로 담아 세계 영화인들의 가슴을 두드렸다. 지난해 다큐멘터리 부문의 칸영화제로 불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이 작품은 22일 국내 관객과 만난다.

6일 오전 서울 사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승준 감독은 "카메라 한대를 빌려 혼자서 무작정 시작한 다큐멘터리"라며 '달팽이의 별'을 소개했다.

시작은 미미했다. 2008년 봄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다 알게 된 조씨 부부를 설득해 2009년 봄부터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처음엔 제작자도 없었고, 스태프도 없었다. 유일한 무기였던 카메라도 친한 선배에게 빌렸다.

"(조씨 부부와) 밥도 같이 먹고 촬영 안 할 때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영화를 찍은 기간은 2년. 그 동안 영화는 조금씩 부피를 키워갔고, 10개국이 관련된 국제적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영상 일부를 보고서 제작자가 따라 붙었고, 2009년 EBS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에서 사전제작 지원작으로 선정돼 받은 3,000만원이 종자돈이 됐다. 일본 NHK와 핀란드 영화위원회가 공동제작자로 참여했고, 미국 선댄스다큐멘터리 펀드 등에서도 지원을 받았다. "카메라 살 돈 400만원 가량이 없어 카메라 회사로부터 협찬을 받아야 했던" 영화의 제작비는 결국 2억8,000만원에 이르게 됐다.

이 감독은 이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생각지도 않게 홍콩과 영국, 네덜란드 등을 오가야 했다. 편집은 레바논 다큐멘터리 감독 시몬 엘 하브레가 맡았고, 사운드 작업은 핀란드에서 이뤄졌다. 핀란드 영화위원회의 지원금 4만 유로를 모두 핀란드에서 소진해야 된다는 조건 때문이었다. 사운드 작업에 책정된 돈만 2만5,000유로. "이게 얼마짜리 영화인데 그 많은 돈을 사운드 작업에 다 쓰냐"며 처음엔 반발도 했지만 결국 영화엔 약이 됐다. '달팽이의 별'은 이미 폴란드와 벨기에의 방송사들에 팔렸고, 해외 극장 개봉도 추진 중이다. 52분짜리 방송용 영화는 지난해 NHK 전파를 탔다.

"제작의 80%를 해외에서 지원 받았어요. 여기저기 응모를 해서 지원을 받다 보니 제작 기간이 좀 걸리더군요. 한국적인 소재가 아니라 보편적인 내용이라 가능했던 일 같아요. 한국 다큐멘터리영화의 약점이 편집과 사운드인데 제 영화는 외국에서 작업해서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제가 의도치 않게 한국 다큐멘터리계에 길 하나를 만들어놓은 거죠."

영화는 부산 해운대에서 바다를 느끼고, 시를 쓰는 조씨 부부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일상에 집중한다. 그들의 고단한 삶의 모습도 지켜봤지만 "영화 전체 호흡을 해친다"는 생각에, 그리고 "주인공들이 자신들을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굉장히 싫어해서"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이 감독은 "관객들은 힘들게 사는 모습도 보고 싶어하는데 그런 전형화된 휴먼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 '인간시대' 등을 보며 다큐멘터리에 빠져든 이 감독은 1999년부터 방송과 영화를 오가며 '신의 아이들'(2008) 등 다큐멘터리만 만들고 있다.

"방송에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사실이 전해질 때 느껴지는 전율이 좋았어요. 극영화는 못할 것 같아요. 다음엔 동양적 가치를 담을 수 있는, 사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어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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