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비상 곳간인 외환보유액이 2월말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2,000억달러 붕괴 직전까지 몰렸던 외환보유액은 차근차근 몸집을 불려 이제 3,000억달러대에 안착한 모습이다. 덩치가 작을 때야 안전한 한 두 곳에 '몰빵'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젠 외환보유액 운용의 묘미를 살릴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진 상황. 투자 다변화를 위한 행보도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월말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3,158억달러로 1개월 새 44억6,000만달러 불어났다. 작년 8월(3,122억달러)을 넘어서는 역대 최고 기록이다. 한은은 "지난달 유로화, 파운드화 등이 강세를 보이면서 달러화 환산 보유액이 늘어났고, 외화자산 운용 수익도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굴릴 수 있는 자금이 늘어나면서 수익을 극대화하고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투자를 다변화하려는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무엇보다 올해는 중국 위안화 자산 투자 원년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한은은 1월 중순 중국 인민은행으로부터 은행간 채권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역외투자자 자격을 승인받았다. 투자 한도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5억~10억달러 수준이며, 한은은 상반기 중에 첫 투자에 나설 것으로 전해진다. 채권 만이 아니라 장내 주식을 살 수 있는 자격(QFII)도 얻었다. 중국 금융당국이 상반기 중에 2억~3억달러 수준의 증시 투자를 승인하면, 하반기 중에 주식투자에 나설 계획이다. 외환시장 한 딜러는 "외환보유액 중 중국 채권이나 주식 투자 규모 자체가 크지 않겠지만, 첫발을 내디딘다는 자체가 의미 있다"며 "달러화 자산 비중은 점점 줄여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한은이 금융기관이 발행하는 금융채 외에 일반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에 직접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한은이 직접 회사채를 사들이는 방안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한은은 이를 위해 최근 외환보유액을 운용하는 외자운용원 조직을 지금까지 운용통화별 (달러운용팀ㆍ기타통화운용팀 등) 체제에서 투자상품별(정부채팀ㆍ회사채팀 등) 체제로 바꿨다. 그간 정부채권 위주의 투자에서 벗어나 회사채 투자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작년 이후 금 투자를 확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 매입을 늘리는 와중에도 뒷짐만 지고 있던 한은은 작년 6, 7월 25톤의 금을 매입한 데 이어 11월에 또 다시 15톤을 추가로 매입했다.
그렇다고 외환보유액 투자 다변화가 눈에 띌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 같지는 않다. 기축통화로서 미국 달러화 지위가 흔들거리고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우월적 지위를 대체할 다른 대안이 당분간 등장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 위안화나 회사채, 금 등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큰 투자의 비중을 무제한 늘리기는 불가능하다.
추흥식 한은 외자운용원장은 "양적인 측면의 투자 다변화보다 질적인 측면에 투자 다변화에 더 신경을 쏟고 있다"며 "국제 금융시장 변동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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