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역삼동에 사는 이모(31ㆍ여)씨는 이달 초 태어난 지 2개월 된 여아를 데리고 보건소 대신 집 인근 A소아과의원을 찾았다. 올해부터 정부의 지원으로 병원에서도 필수 항목인 디프테리아ㆍ파상풍ㆍ백일해(DTaP) 백신은 무료로 맞힐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 그러나 이씨는 접종 비용 3만원을 내기로 했다. 의사가 "돈을 더 내면 방부제가 함유되지 않은 고급형 백신을 접종할 수 있다"고 권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어느 부모가 아이에게 방부제가 든 약을 맞히고 싶겠냐"며 "비싸도 좋아 보이는 걸로 골랐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백모(32ㆍ서울 구로동)씨는 두 달 전 출산한 남아에게 뇌수막염과 폐구균, 로타바이러스 등 3가지 예방백신을 한 번씩 접종하는 데 모두 29만원이 들었다. 접종비가 싸졌다는 말을 들었지만, 해당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백씨는 "넉 달 안에 2, 3차 접종이 있어 부담이 크다"며 "요즘은 출산 준비할 때 적금이라도 들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정부의 지원 확대로 영유아 대상 필수 예방 접종이 사실상 무료가 됐지만, 아이를 둔 엄마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이들이 선호하는 일부 필수 접종 백신이 지원 대상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부 병원의 상술까지 더해져 '허울뿐인 무료접종'이란 불평이 나오는 실정이다.
5일 보건당국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12세 미만의 모든 아동에게 반드시 필요한 필수 예방 접종 비용 지원금을 크게 늘리면서, 올 1월부터 아이 부모는 백신 종류에 상관 없이 한 차례 접종에 5,000원만 부담하면 된다. 특히 서울 경기 등 6개 시ㆍ도 주민은 지방자치단체가 이마저 지원함에 따라 필수 백신을 무상으로 맞을 수 있게 됐다. 싼 가격에 주사를 맞을 수 있는 의료기관도 보건소 253곳에서 병원 7,000여곳으로 늘었다.
그러나 수은 방부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부모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어온 외국산 DTaP 백신은 이번 지원 항목에 포함되지 않았다. 가격 차이에 비해 효능 차가 미미한 데다 방부제가 유해하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는 게 당국 설명이지만, 문제는 '혹시나'하는 부모들의 불안 심리다. 이런 상황에서 병원이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면 부모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추가 비용을 더 내고 비싼 백신을 접종하기 십상이다.
더 큰 불만은 정부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선택 백신인 뇌수막염ㆍ폐구균ㆍ로타바이러스 백신은 비용이 꽤나 든다는 것이다. 상당수 부모들이 감염을 우려해 이들 백신을 맞추고 있는 실정인 반면 생후 6개월 내 아이에게 모두 접종하려면 비용이 100만원에 육박한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육아 카페 '맘스홀릭 베이비'의 한 회원은 "저렴한 필수 접종은 무료이고 비싼 선택 접종비용은 그대로이니 젊은 부부들이 아기를 낳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올해부터 정부가 지원하는 DTaP와 IPV(소아마비) 혼합백신을 선택하면 본인 부담 비용이 5,000원 아래로 떨어지는 데다, 모두 8회였던 접종 횟수가 절반으로 감소하게 된다"며 "이렇게 더 개선된 백신을 도입했는데도 일부 병원이 정부 지원이 되지 않는 고급형 DTaP 백신을 권하는 건 접종 시행료를 더 많아 받아 챙기려는 속셈"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소아마비 등 일부 감염병이 국내에서 오랫동안 발병하지 않고 있다 해도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상 필수 접종 대상 목록에서 이를 빼고 뇌수막염 등 선택 백신을 필수항목으로 추가할 순 없다"며 "필수 예방 접종 범위를 늘려 지원하면 좋겠지만 예산 증액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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