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현직 검사가 돌연 사표를 제출했다. 박희태 국회의장,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핵심 피의자에 대한 검찰의 축소 수사가 사표 제출의 결정적 원인이 됐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검찰 수뇌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질 전망이다.
5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 소속 허태원(42ㆍ사법연수원 33기) 검사가 이날 사표를 제출했다. 허 검사는 돈 봉투 사건 수사결과가 발표된 지난달 21일 이후 여러 차례 사의 표명을 했지만 서울중앙지검 수뇌부가 만류하자 지난달 27일부터 이 달 2일까지 휴가를 냈다. 하지만 이날 휴가를 마치고 출근한 허 검사는 최교일 지검장과 정점식 2차장검사, 이상호 공안1부장 등의 만류에도 결국 사표를 냈다.
복수의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허 검사가 조직을 떠난 이유는 돈 봉투 사건 수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수사팀은 고승덕 의원실에 300만원이 든 돈 봉투를 살포한 혐의만 적용해 박 의장과 김 전 수석,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 3명을 불구속 기소 하는데 그쳐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허 검사도 수사결과 발표 이후 박 의장에 대한 수사 축소와 핵심 피의자에 대한 불구속 수사에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 검사는 당시 박 의장 공소사실에 300만원 이외에 구 의원들에게 2,000만원이 든 돈 봉투 살포를 지시한 혐의를 받은 안병용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의 범죄사실까지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돈 봉투 살포를 총괄 지시한 것으로 의심되는 김 전 수석에 대해서도 구속영장 청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조 비서관에 대한 자금추적 결과 박 의장 및 박 의장 측으로부터 뭉칫돈이 들어온 정황을 발견하고도 이 부분을 살펴보지 않고 서둘러 수사를 끝낸 데 대해 허 검사는 크게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당시 조 비서관의 가족 계좌에 방산업체의 돈 1억원이 들어온 사실을 확인했지만, 이 돈이 박 의장이 차명으로 받은 불법 정치자금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실제로 허 검사 이외에도 당시 수사결과에 대해 적지않은 검사들이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수사팀 관계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불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허 검사의 사의 표명이 가져올 파장을 우려해 검찰에서 동료 검사와 지휘부를 동원해 사의를 철회할 것을 수 차례 종용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반대로 일각에서는 허 검사가 업무 스트레스와 가족사가 원인이 돼 사의를 표명한 것이지 돈 봉투 사건 수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허 검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정점식 2차장검사는 "허 검사는 돈 봉투 사건 수사를 직접 담당하지 않은 기획검사"라며 "공안1부 검사들이 수사를 끝내고 번갈아 휴가를 갔는데 허 검사도 오늘부터 출근했고 우리에게 사의를 표명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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