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카메라를 거부하고 아날로그 흑백필름 작업만 이뤄지는 공간이 아직도 있다면 믿겠는가. 서울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물나무 스튜디오’가 그런 곳이다. 시쳇말로 흑백사진점이다.
5일 오전 현장을 찾았다. 촘촘하게 들어선 한옥들 사이로 무채색의 2층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문을 연 지 1년이 채 안됐지만 오래된 듯 낡고 거친 질감의 건물에서 옛것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입구의 나무 바닥은 군데군데 빛이 바래 있고, 곳곳에 놓인 낡은 목가구들은 시간의 흐름 자체다.
‘물나무 스튜디오’대표는 사진작가 김현식(42)씨다. 김씨는 “이 곳은우리의 근대사진을 재현하는 무대”라고 했다.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은염 필름만으로 촬영하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이곳이 유일하다”고 덧붙였다.
일간지 출판국의 사진기자로 일하다 퇴사한 그는 수년 동안 독립 스튜디오를 운영해왔다. 패션 잡지, 광고 등 주로 상업적인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작가로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실제 있는 것처럼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면서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요. 그럴 수록 있는 그대로의 이미지를 재현하고 그 속에 정서를 담아내는 아날로그 사진에 대한 열망이 강해지더군요.”
그래서 떠올린 것이 ‘근대의 사진관’이었다. 김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관이 있었던 계동에 당시의 사진관을 본뜬 ‘사진점’을 복원하고 싶었다”고 했다.
전문 현상소의 암실이 컴퓨터와 프린터로 대체된지 오래됐고, 화학적 인화와 현상 작업이 아닌 디지털 프로세스를 거치는 마당에 예전 방식을 그대로 살린 사진 작업은 녹록치 않았다.
“디지털 카메라는 1분에 수 십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원판 카메라는 한 필름당 한 컷 밖에 못 찍잖아요.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셔터에 손가락을 대고 오랜 시간 숨죽이며 기다려야 하죠. 필름에서 사진으로 인화하기까지도 짧게는 하루, 길게는 수 일이 걸려요. 혹 인화 작업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다시 전 과정을 반복해야 합니다. 필름이며 약품은 또 얼마나 고가인지...”
김씨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느리고 진중한 ‘실험’을 하는 이런 과정이 자신을 붙잡아 놓는다고 했다. “흑백 색감과 카메라 셔터소리는 본연의 모습을 충실하게 그려낼 뿐입니다. 디지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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