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석을 갖춘 극장 안에서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카메라 플래시가 쉴새 없이 터졌고, 배우들의 말 한마디 동작 하나에 환호성이 일었다. 배우들과 감독의 애장품 경매는 치열한 경합의 연속이었다. 한 시간 가량 이어진 이날 행사는 케이크에 꽂힌 촛불 하나를 배우들과 감독이 끄면서 절정에 올랐다. 스크린에 117분의 빛이 투영되면서 행사는 끝을 맺었다.
주류 부럽지 않은 팬덤
지난 2일 오후 서울 신사동 한 멀티플렉스에서 열린 이 행사는 개봉을 앞둔 여느 상업영화의 프로모션 행사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이날의 주인공은 독립영화 '파수꾼'이었다. 지난해 3월3일 극장가를 찾았던 '파수꾼'의 개봉 1주년을 맞아 마련된 일종의 생일 잔치였다. 이날 행사는 시작 전부터 후끈했다. 이날 비슷한 시간 서교동의 한 문화공간에서도 '파수꾼'의 개봉 1주년을 기념한 상영회가 있었는데 극장 좌석 77석이 예매시작 30초 만에 다 팔렸다. 신사동 멀티플렉스의 좌석도 6시간 만에 매진됐다. 이날 극장을 찾은 관객 중엔 "5번 봤다"며 손을 흔드는 팬들이 적지 않았고, 10번을 본 '파수꾼 폐인'도 있었다.
충무로에서 개봉 기념 생일상을 받은 영화는 이명세 감독의 '형사: Duelist'와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 정도다. '파수꾼'은 여느 독립영화로선 상상하기 힘든 극진한 대접을 받은 셈이다.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은 "굉장히 얼떨떨하면서도 기쁘고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파수꾼'은 2만1,783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이 찾아 독립영화로선 보기 드문 흥행을 기록했다.
독립영화는 일부 영화인들과 극소수 관객만 즐기는 '그들만의 영화'라는 인식은 이제 옛 것이 돼가고 있다. 상업영화만큼 떠들썩하게 관객들이 들진 않아도 팬덤 현상까지 일으키며 대중 곁으로 바짝 다가가고 있다. '파수꾼' 개봉 1주년 행사는 최근의 이런 추세를 상징한다.
독립영화의 상업성은 멀티플렉스 체인 CJ CGV가 지난 1일부터 31일까지 전국 9곳의 무비꼴라쥬관에서 열고 있는 한국독립영화 페스티벌로도 입증되고 있다. '달팽이의 별' 등 개봉 예정작과 '똥파리'를 비롯해 화제를 모았던 수작 등 독립영화 36편이 관객들과 만난다. 작은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이라지만 멀티플렉스에서 국내 독립영화 장기 릴레이 상영은 이례적이다.
희미해지는 주류와 비주류 경계
지난해 충무로는 독립영화들의 고요한 돌풍에 휘말렸다. 이른바 독립영화 사대천왕이라 불리는 '파수꾼'과 '혜화, 동' '무산일기' '돼지의 왕'이 바통을 이어받으며 개봉해 화제를 뿌렸다.
최근 독립영화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만듦새에서 주류 상업영화와 큰 차이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적 구호를 앞세우던 이전 독립영화와 달리 일상의 정서를 담아내는 경향도 짙어지고 있다. 충무로의 한 감독은 "'파수꾼'과 '혜화, 동'을 최근에야 봤는데 완성도에 깜짝 놀랐다. 적어도 기술적인 면과 소재 면에서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차이는 사라진 듯하다"고 말했다.
수작 독립영화에 팬덤 현상까지 따르고 주류영화와 비주류영화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독립영화를 도약대 삼아 스타덤에 오르는 신진배우들도 늘고 있다.
'파수꾼'의 이제훈은 '파수꾼' 영상 일부를 본 장훈 감독의 눈에 띄어 '고지전'에 출연했고, 영화 '건축학개론'과 '점쟁이들', 드라마 '패션왕'의 주연을 연이어 꿰찼다. 서준영도 '파수꾼' 출연 이후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와 '당신뿐이야'의 주요 배역을 맡았다. '혜화, 동'의 유다인은 드라마 '보통의 연애'와 영화 '구국의 강철대오'의 주연으로 발돋움했다. 이소영 사람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독립영화 촬영 현장은 젊은 배우들이 영화를 배워가기도 좋은 환경"이라면서도 "독립영화로 스타가 될 순 있지만 묻지마식 출연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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