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파제 믿다 희생 컸는데 더 쌓는다고 안전한가"
도호쿠 대지진이 참혹하게 할퀴고 간 재해지역은 지난 1년간 어떻게 변했을까. 지난달 29일 10개월 만에 다시 찾은 이와테(岩手)현 미야코(宮古)시의 다로(田老)마을은 쓰레기 더미에 하얗게 내려 앉은 눈을 제외하고는 처음 방문했던 지난해 5월과 비슷했다. 그러나 절망에 흐느끼던 그 때와 달리 재기하겠다는 주민들의 의지는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일본 최대규모의 방파제가 조성돼 있는 다로마을은 일본 스스로 세계 최고라고 자랑해온 쓰나미 방지 대책의 산실이었다. 길이 2.4㎞, 높이 10m의 방파제는 바다로부터 이중 삼중으로 마을을 보호하고 있어 전문가들은 어떠한 쓰나미도 이 방파제를 넘어올 수 없다고 장담해왔다. 하지만 대지진 당시 최대 37.9m 높이의 쓰나미가 들이닥쳤고, 방파제의 위력을 맹신해 대피가 늦어지면서 전체 주민 4,400여명 중 5%에 가까운 184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됐다.
방파제를 둘러싸며 조성돼 있던 마을은 쓰나미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신 8만톤이 넘는 쓰레기가 그 자리를 메웠다. 인부 몇 사람만이 바닥을 다지기 위한 철강보강 작업을 하고 있었다. 1년 동안 쓰레기가 처리되지 않다 보니 지반이 약해져 침하가 시작된 때문이다. 다른 쪽에서는 고철덩어리가 된 차량들을 대형 트럭에 옮겨 싣는 작업이 한창이다. 한 인부는 "차량들은 고철로 분해해 처리가 가능하지만, 건물 잔해나 일반 쓰레기는 처리할 곳이 없어 진척이 더디다"며 "이대로라면 다 치우는데 앞으로 몇 년이 걸릴 지 모른다"고 말했다.
방파제 앞 바다에서는 바닷속 잔해물을 꺼내기 위한 공사가 진행중이다. 주민 상당수가 어업에 종사하는 다로마을에서는 어선 947척 중 850척이 파손됐고, 아직도 바닷속에 적지 않은 잔해물이 남아있다.
쓰나미 당시 목숨을 구한 주민들은 지금 고지대 가설주택에 분산 수용중이다. 마을에서 10㎞ 가량 차를 타고 도착한 그린피아 가설주택단지에는 80가구의 주민들이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이 곳에는 식당 이발소 학원 편의점 등 상점만도 22곳이나 들어섰다. 모두 주민들이 운영한다. 하지만 대다수 주민들은 이렇다 할 일자리를 갖지 못한 채 하루하루 정부의 보조금으로 연명하고 있다.
마을 복귀도 조금씩 논의되고 있다. 미야코시는 방파제를 14.7m까지 높이는 조건으로 주민들의 마을 복귀를 설득하고 있다. 시는 전문가들의 시뮬레이션을 근거로 이 정도 높이면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가설주택에서 가게를 운영중인 도리 센페이(鳥居仙平ㆍ63)는 "쓰나미를 과소평가한 전문가들 때문에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됐다"며 "기존 마을보다 높은 지대에 집단 거주지역을 조성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미야코시 다로종합사무진흥과 관계자는 "고령자들 중에는 예전 마을로 돌아가려는 분들이 많아 희망자에 한해 고지대로 이전하는 방안이 떠오르고 있다"며 "하지만 마을을 두 곳으로 나눠 건설할 경우 비용이 만만치 않아 최종 결론이 어떻게 날 지는 알 수 없다"고 전했다.
다로=글ㆍ사진 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 도호쿠지역 쓰레기 2200만톤 골머리
사상 초유의 대지진과 쓰나미가 강타한 일본 도호쿠(東北) 지역은 쓰레기와의 전쟁이 한창이다. 쓰나미로 발생한 쓰레기는 미야기(宮城)현 1,569만톤, 이와테(岩手)현 475만톤, 후쿠시마(福島)현 208만톤으로 도호쿠 3현을 합쳐 2,253만톤에 달한다. 1년이 지난 지금 소각이나 매립, 재활용 등으로 처리가 끝난 쓰레기는 5.6%, 117만6,000톤에 불과하다.
쓰레기 처리가 더딘 이유는 무엇보다 쓰레기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기 때문이다. 쓰나미 피해가 심했던 미야기현 이시노마키(石巻)시의 쓰레기는 616만톤으로 이와테현 전 지역을 합친 것보다 많다. 시 전체에서 평소 배출해온 쓰레기의 106년치 분량이다. 쓰레기가 방대하다 보니 일손도 턱없이 모자라다.
그나마 도심지역의 쓰레기 처리는 빠른 편이다. 마을 전체가 피해를 입거나, 규모가 작은 지자체는 상황이 심각하다. 한 마을이 송두리째 날아간 이와테현 미야코(宮古)시의 다로마을은 1년 동안 처리한 쓰레기가 2%에 불과하다.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시는 상대적으로 진척 속도가 빨라 9% 가량을 처리했으나, 아직도 90만톤 가량을 더 치워야 한다.
도호쿠 지역 쓰레기를 전국 각지에 분산 처리하겠다던 일본 정부의 계획도 순조롭지 않다. 일본 47개 광역 지자체 중 도호쿠의 쓰레기를 받아주는 곳은 도쿄(東京)도, 아오모리(青森)현, 아키타(秋田)현이 전부다. 쓰레기에 방사성 오염물질이 포함돼있을 지 모른다는 주민들의 우려 때문이다. 시즈오카(静岡), 오사카(大阪)시 등 일부 지자체 단체장이 주민들을 설득하고 있지만 요지부동이다.
이 문제로 지역 갈등도 불거진다. 리쿠젠타카타시 주민들이 쓰나미로 뽑혀나간 다카타마쓰바라(高田松原)의 소나무 7만여 그루 중 일부를 지난해 10월 교토(京都)시의 '고잔노오쿠리비(五山送り火)' 축제 점화식에 기증키로 했으나, 방사성 물질 오염을 우려한 주민반발로 무산됐다. 당시 도호쿠 지역 주민들은 "원전사고로 발생한 쓰레기도 아닌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며 서운함을 숨기지 못했고, 지금도 두 지역 주민들은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2014년 3월까지 쓰나미 잔해를 모두 처리하겠다고 공언한 일본 정부의 약속도 공염불이 될 공산이 커졌다. 호소노 고시(細野豪志) 환경장관은 "현재대로라면 달성이 매우 어렵다"고 실토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는 "재해지역 쓰레기를 받아주는 지자체에게는 정부가 재정지원을 하겠다"며 당근을 제시했다.
미야코ㆍ리쿠젠타카타=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 "손녀 찾다 휩쓸릴 뻔… 30년 터전 잃었지만 생명의 소중함 깨달아"
쓰나미로 폐허가 된 다로방파제에 새 건물이 하나 들어섰다. 3평 남짓한 조립식 가건물에 다로후루사토물산센터라는 간판을 내건 식료품가게로 지난해 10월 문을 열었다.
가게 주인 가와토 요시코(川戸世志子ㆍ63)씨는 쓰나미 직전까지 이곳의 2층 건물에서 민박집과 식당을 운영했다. 근처 리쿠추 해안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정도로 경치가 아름다운데다 다로방파제의 유명세 덕분에 적지 않은 관광객이 찾아왔다. 물론 벌이도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11일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오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점심 영업을 마치고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데 갑자기 쓰나미가 몰려온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급하게 귀중품을 챙긴 뒤 바닷가의 손녀딸 보육원으로 뛰었죠. 얼마를 달렸을까. 보육원 교사가 전화해 '아이는 우리가 데리고 피신할 테니 어서 높은 곳으로 도망치라'고 했어요. 방향을 바꿔 고지대로 달렸죠. 높은 곳에 도착한 순간 발 아래로 물이 차 올랐고 도로를 달리던 차량이 쓰나미에 떠내려가기 시작했어요. 제가 운영하던 민박집도 쓰나미에 휘말리더니 몇 갈래로 찢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휴대폰이 불통되고 손녀딸의 생사마저 모른 채 대피소에서 이틀을 지냈다. 그리고 어렵게 만난 딸과 손녀. "딸과 손녀를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30년 이상된 삶의 터전을 잃은 가와토씨는 한동안 망연자실했다. 다로방파제 쪽은 쳐다보기도 싫었다. 살아갈 의욕을 상실한 채 7개월을 보냈다.
"어느 날 동네 주민들이 민박집을 운영할 당시 제가 제공했던 토산주의 맛이 생각난다며 술을 다시 빚으면 어떠냐고 제안하더라구요. 폐허 속에서도 내가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대로 주저앉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죠."
처음에는 술을 빚기 위해 민박집 터에 가건물을 짓고 일을 시작했는데 찾아 오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자판기, 담배, 식료품을 차례로 들였다. 이제는 제법 가게의 구색을 갖췄다.
가와토씨는 쓰나미로 큰 금전적 손실을 봤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그는 "만일 그 당시 보육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지 못했더라면 아마 쓰나미에 휩쓸렸을 것"이라며 "일을 하면서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다로=글ㆍ사진 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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