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해가는 이명박정부가 획기적인 일 하나를 해냈다. 3월 1일자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을 공포한 것이다. 이 법은 자살을 정부와 사회(지방자치단체ㆍ기업ㆍ학교 등)가 관리해야 할 '사회적' 현상으로 간주하고, 자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책무와 예방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해 법제도화한 사상 최초의 것이다. 원론적으로 이는 한국 정부가 복지국가로서의 또는 '생체권력'으로서의 국가성을 강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우리의 생명(삶)과 죽음에 '법'을 통해 개입하는 정부를 갖게 된 것이다.
이 법에는 곱씹어볼만한 조항들이 많지만, 우선 흥미로운 점은 한국 자살률을 세계 1위로 만든 것이 바로 이명박정부라는 점이다. 주지하듯 현 정부는 복지와 인권을 전반적으로 후퇴시키고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재벌 중심의 경제정책을 운용해 고용 불안정성을 높였고, 전국 단위의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같은 잘못된 교육정책을 통해 사회 전반의 '경쟁'의 정도를 강화했다. 이 모두가 사회적 우울이나 스트레스를 높이는 일이니, 어쩌면 이 정권은 세계 최고 자살률의 실질적인 '배후'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 2008년부터 지금껏 단 한 해도 자살률은 낮아지지 않았다. 노인은 노인대로, 청소년은 청소년대로 끔찍하게 많이 자살하고 있다. 따라서, 이 정부가 자살예방과 생명존중문화에 관한 법을 공포한 것은 하나의 거대한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가족들만 생각해도 그렇다.
그럼에도 법 자체는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아직도 자살이 사회적 현상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외면하고 단지 병적인 심리를 가진 극소수의 개인에 의해 저질러지는 일이라 생각하거나, 특히 몇몇 종교 교단 때문에 무조건 '자살은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살예방법은 자살 문제에 대한 국가와 사회(기업 등)의 책임, 그리고 자살 위험에 처한 개인들에 대한 타인들의 의무까지 규정하며 그것을 '사회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이 '생명윤리의식 및 생명존중문화의 확산, 건강한 정신과 가치관의 함양 등 사회문화적 인식개선에 중점을 두고 수립되어야 한다'(제2조 2항)고 기본정책의 방향을 규정한 대목은 아쉽다. 일견 당연해보이는 이 조항은 바로 앞에서 비판한 바, 자살에 관한 잘못된 관념이나 일부 종교 교단에서 조장하는 생각에 근거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즉, 이는 암암리에 자살자들이 생명을 존중하지 않거나 건강한 가치관을 갖지 않은 사람들인 것처럼 말하고 있고, 생명존중의 '문화'가 조성되면 저절로 자살자들이 줄어들 것이라는 관념적인 생각을 전제하고 있다.
'자살예방의 날'을 정하면 자살자들이 줄어들까. 과연 자살자들이나 자살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인가. 또는 그들이 생명을 존중하지 않아서 자살했는가. 대부분의 자살자들이야말로 어떤 면에서는 진정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야말로 궁지에 몰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고 최후로 타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그 길을 택한다. 자살은 일종의 '차악의 선택'이며 모든 자살에는 반드시 원인을 제공한 구체적인 상황과 구조가 있다. 따라서 사회적 우울과 고립을 줄여야 '삶의 질'이 높아진다. 살아갈 용기를 줘야 자살이 줄어든다. 이런 인식을 통해서만 관념적이고도 대증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대책이 나오고, 보다 현실적인 가족ㆍ학교ㆍ노사 정책을 자살 문제와 관련시킬 수 있게 된다.
또 이 법은 아직 빈 데가 많고 조항 중에는 실효성이 의심 가는 조항도 있다. 이를테면 자살 예방에 대한 사업주의 책무는 '근로자의 정신적인 건강 유지를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선언적인 말 한 마디 밖에 없다. 즉 아무 규제력이 없는 사문이 처음부터 법 조항에 포함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 법 덕분에 세계 최고의 자살률이 낮아지기를, 그리고 법의 공백을 다음 국회가 적절히 보완하기를 기대해보자.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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