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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폭력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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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폭력시대

입력
2012.03.0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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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 정치깡패 시대 이후 조직폭력배가 가장 창궐했던 시기는 1980년 대였다. 사건기자 초년기였던 그 때 겁 없이 폭력조직 속에 들어가 잠입 취재를 감행했던 적이 있다. 이른바 전국구 보스급과 어울리며 그들 세계를 속속들이 들여다 보았다. 그들은 정ㆍ관ㆍ연예계와 검ㆍ경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스스로를 시대의 주역처럼 착각하고 있었다. 검은 양복 유니폼으로 떠올려지는 그들 세계의 과장된 의식과 문화는 지금도 실소를 자아낸다.

■ 당시 양은이, OB파와 함께 소위 조직폭력 3대 패밀리로 불리던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씨가 위독하다는 뉴스가 나왔다. 기업인 청부협박 혐의로 수사를 받다 쓰러져 의식불명에 빠졌다는 내용이다. 열 차례 이상 구속에 30년이 넘는 감옥 생활을 겪고도 끝내 말끔하게 손을 씻지 못한 그의 삶이 딱하기 그지없다. 그와 함께 80년대 폭력세계의 주도권을 다퉜던 조양은씨 역시 올 초에도 후배들이 조직 재건을 꾀하다 구속되는 등 여전히 아슬아슬한 상태다.

■ 다른 사회 현상들처럼 조폭도 사회구조의 반영이다. 당시 서울의 주요 폭력조직이 모두 호남 출신이었던 데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3공ㆍ유신정권을 거치면서 심화된 지역 불균형으로 호남엔 경제적으로 변변한 바탕이 없었다. 어디나 있기 마련인 지역 깡패들 중에서 유독 그들이 대거 상경, 죽기살기 다툼을 벌인 게 그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실 더 큰 조직인 부산 등 영남 조폭들이 먹을 것 아쉽지 않은 제 터전을 두고 굳이 외지에 눈 돌릴 이유는 없었다.

■ 권력도 조폭과 무관치 않다. 5ㆍ16쿠데타 직후 깡패 소탕, 80년 삼청교육대처럼 정권 초기엔 사회 정화를 내걸다가도 안정되면 되려 폭력을 이용하려 드는 게 독재적 권력의 생리다. 76년 신민당사 난입과 전당대회 각목사건 때도 김씨는 행동대장으로 동원됐다. 87년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사건을 포함, 선거 등 정치적 사건 때마다 깡패들의 동원은 흔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김씨 또한 암울한 시대에 의해 만들어지고 버려진 한낱 가련한 희생자인지도 모르겠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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