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비서실장의 모델 격인 백악관 비서실장은 문지기(gatekeeper) 권력으로 불린다. 대통령 측근의 사람과 정보를 통제하는 권한과 영향력을 그리 뭉뚱그렸다. 그러나 비서실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대통령의 정치적 이익을 돌보는 것이다. 정책 아젠다를 의회 및 정부와 타협하는 역할을 넘어 온갖 공격에서 대통령을 지키는 일이다. 황당한 음해든 추악한 비리 스캔들이든, 대통령을 에워싸고 방어해야 한다.
닉슨 대통령의 충성스러운 비서실장 홀더만은 숫제'대통령의 개새끼(son of a bitch)'를 자처했다고 한다.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끝까지 은폐하려다 징역형을 살았다. 홀더만을 형제처럼 아낀다던 닉슨은 사임 전날, 그의 사면 요청을 거절했다.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닉슨 자신은 후임 포드 대통령의 사면 조치로 치욕을 덜었다.
문재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사후에까지 가장 믿음직한 측근 노릇을 했다.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민정수석을 거쳐 2007년 3월부터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냈다. 문재인이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2009년 5월 노 대통령의 돌연한 죽음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는 황망 중에도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고 침착했다. "원망하지 말라"는 유언을 가슴에 새긴 듯, 정성껏 정부와 장례를 상의하고 보살펴 민심을 진정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 조신한 문재인이 요란하게 정치 중원에 돌아왔다. 친노 세력과 함께 민주당을 평정하고 총선 돌풍을 장담하고 있다. 대권 의지로 안철수에 이어 박근혜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역사와 정치에도 작용과 반작용 법칙이 작동한다. 문재인과 친노가 부활과 비상(飛翔)을 즐길 겨를도 없이, 노 대통령 딸의 뉴욕 허드슨 강변 아파트가 악령처럼 되살아났다.
노 대통령의 죽음을 부른 박연차 게이트 수사로 드러난 뉴욕 아파트는 독이 묻은 칼과 같다. 검찰은 박연차가 마련한 100만 달러를 대통령 부인 권양숙이 2007년 6월 국빈 방미 때 가져가 아파트 구입자금으로 건넨 사실을 밝혀냈다. 노 대통령은 2009년 2월 뒤늦게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문재인은 주장했다.
노 대통령의 죽음에 민심이 격앙한 것은 정권과 검찰이 명예와 자존심을 악의적으로 짓밟았다고 여긴 때문이다. 황급히 수사를 종결한 것은 뒤늦은 각성이 바탕이다. 이를 악문 문재인의 인내는 비리 응징을 재촉하던 이들에게 절제와 관용을 일깨웠다. 그렇게 고인과 독 묻은 칼을 함께 묻는 타협을 어렵사리 이뤘다.
문재인의 정치 행보는 취약한 사회적 타협을 허물었다. 친노 세력과 함께 검찰 개혁을 외치는 모습은 더욱 그렇다. 아무리 민심이 정권에 등돌린 상황이라도, 노 대통령의 비극이 잉태되던 청와대의 문지기 권력이 스스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업보(業報)를 벌써 잊은 척하는 것은 잘못이다. 검찰을 뭐라 비난하든, 고인의 평온한 영면을 방해할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어리석다. 노무현 유업 계승을 내세우지만, 변화무쌍한 시류에 이끌린 오만하고 이기적인 선택이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유족 주변을 다시 수사하는 것은 패륜이라고 욕한다. 남편을 절망하게 한 권양숙이 문재인과 친노 세력을 격려하는 것을 눈여겨본 이들은 오히려 인륜과 도의를 묻고 있다. 문재인 스스로 높이 날수록 독 묻은 칼이 유족과 자신을 향할 것을 알아야 한다. 설령 대통령이 되더라도 피할 수 없는 세상 이치다.
'정치 검찰'에 침을 뱉고 정치인으로 변신한 전직 여검사는 3년 만의 수사 재개를 법적 안정성을 해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이 50년 지난 부일장학회 강제 헌납을 시비하는 것은 뭐라 말할까. 친일 청산을 되뇌던 노 대통령은 사적 연고에 집착, 친일 행적 자본가의 재산 찾아주기를 내놓고 부추겼다. 역사의 교훈에 무지한 역사 바로 세우기를 답습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어설픈 격파 시범하듯 세상과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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