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는 총구가 아닌 정보에서 시작된다. 이 격언은 정보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유명한 말이다. 특히 평상시가 아닌 국가위기가 발생하는 비상시에는 더욱 그러하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천안함 폭침사건전에 우리가 북한의 기도에 대해 사전에 알고 있었다면 안보상황은 어떻게 전개 되었을까? 김정일 사망정보를 북한의 공식발표전에 알고 있었다면 북한에 대해 좀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손자병법의 '적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모른다면 매번 싸울때마다 반드시 위태롭게 된다'는 말과 같이 국가안보에 있어 정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4년간 안보상의 문제가 터질 때마다 곤욕을 치러 왔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피폭 그리고 김정일 사망사건 등 중대한 안보위기를 되돌아 보면, 드러난 결과의 이면에는 모두 정보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던지, 아니면 국정원과 국방부, 통일부 등 정부부처간에 정보공유가 되지 않았던지 하는 이유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안보위기상황이 일어날 때마다 그러한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구조적인 정보 취약점이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런 문제를 정말로 고쳐 나가야 겠다는 문제의식이 없다는 데 있다. 이것은 안보에 있어 다른 요소보다도 정보의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개선해 나갈 기회는 지난 4년간 여러번 있었다. 그러나 정치권은 그런 사안이 일어 났을때 정략적으로 일회성 문제제기만 했을 뿐 그 해결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후적으로 그것을 팔로우 업하고 독려하는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도 "다 밝힐 수 없어서 그렇지 우리 정보력이 그렇게 걱정하는만큼 취약하지 않다"며 실수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 기회를 잃어 버렸다.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각급 정보기관들은 어느정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앞장 서서 스스로 수술의 메스를 대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권한축소는 물론 정보기관간의 업무영역을 둘러싼 경쟁문제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 임기가 1년도 안 남은 이시점에 국가정보체제에 대한 정비문제를 강력하게 추진한다는 것도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상태로 가만히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환경이 더욱 복잡미묘해져 가고 북한 김정은 체제의 불가측성이 가일층 높아가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새로운 정보환경에 맞는 국가정보체제의 확립을 더 이상 늦출 수는 없다. 국가정보체제를 새로이 정비하고 구축하는 데 무엇보다 선결되어야 할 것은 현재의 국가정보능력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정권교체기에 각 정보기관별로 쇄신 차원의 정비가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졌을 뿐, 국가정보체제라는 거시적 관점에서는 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수립후 60년이 지났지만 모든 정보기관의 업무, 기능, 활동내용 등 정보역량을 국가 차원에서 측정한 일이 한번도 없다. 현재의 정보역량이 어느 수준이라는 것을 알아야 이를 바탕으로 국가정보체제의 정비가 올바른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앞으로 남은 대통령의 마지막 임기 1년은 여러 국정과제를 잘 마무리해서 차기정부에 넘겨주는 일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정부는 국가정보역량에 대해 상세한 기초조사작업을 하기 바란다. 객관적으로 실태조사를 한다면 정치권의 시비로부터도 자유로울 것이다. 이것은 현정부가 국가정보체제의 정비를 위해 토대를 닦는 일인 동시에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성과로도 기록될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한국정보사(情報史)에 있어 최초의 국가정보역량 검증이라는 업적으로 평가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야의 정권차원을 넘어 새로운 국가정보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모두의 노력이 요구되는 때이다.
안광복 연세대 공공문제연구소 연구교수 ·전 국가정보원 기조실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