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르의 화려한 대관식은커녕 임기 6년 채울 수 있을지 미지수"
'A sure thing?(승리가 확실한 것인가)'
5일 오전 러시아 대선의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 CNN방송이 전한 기사 제목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당선이 확실시되지만 그를 과연 진정한 승자로 볼 수 있겠느냐는 투였다.
푸틴 총리는 잠정개표 결과 63%대의 득표율로 1차 투표에서 3선에 성공했다. 2004년 대선의 득표율(72%) 보다는 낮았으나 2000년 대선의 득표율(53%)보다는 훨씬 높았다. 지난해 12월 총선 부정시비를 계기로 분출된 반푸틴 정서를 감안하면 '차르(황제)의 부활'이라는 표현을 써도 좋을 듯싶다.
그러나 러시아는 선거가 끝나자 더욱 들끓고 있다. '화려한 대관식은 언감생심이고 푸틴이 6년 임기를 채울 수 있을 지도 미지수'(워싱턴포스트)라는 외신 보도도 잇따른다. 분노한 민심은 선거 자체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 사상 최초로 9만1,000여 투표소에 웹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공정성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러시아 정부의 노력도 허사였다.
개표가 시작되기 전부터 회전목마 투표(신분을 속여 한 사람이 중복 투표하는 행위), 대리 투표, 동원 투표 등 수많은 부정선거 사례가 보고됐다. 모스크바 북동부 58번 투표소에서 선거감시 운동원으로 일한 나데즈나 니스네비치(27)는 "5시간에 걸쳐 군 관련 건물에 같은 주소지를 둔 100명이 투표했다"고 증언했다. 선거감시단체 웹사이트(control12012.ru)에 올라온 관권선거 의혹은 이날 현재 모스크바에서만 3,000건을 넘어섰다. 야권과 반푸틴 진영은 선거 불복종 운동에 나설 움직임이다. 지난 총선을 통해 러시아 민주화의 기수로 떠오른 블로거 알렉세이 나발니는 "10만명이 모이는 반푸틴 시위대가 크렘린궁까지 행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발 여론을 의식한 듯, 푸틴 총리는 대선 승리 후 첫 공식행사로 총리 관저에서 주가노프 당수를 제외한 야당 후보 3명을 만나 국정 운영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인테르팍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총리는 이 자리에서 "국가적 과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힘을 합치자"고 말했다. 이들 3명은 주가노프 당수와 달리 푸틴 총리의 승리를 인정하고 축하했다.
사그라들지 않은 반 푸틴 열기는 역설적으로 푸틴 집권 3기의 최우선 해결과제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러시아 정치기술센터의 알렉세이 마카르킨 부소장은 "푸틴 진영은 득표율 60%를 넘기면 총선 부정의 망령을 떨쳐낼 수 있다고 자신했으나 득표율이 얼마가 됐건 저항의 확산은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분석했다. 권위주의로 대변되는 푸틴식 통치 행태를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다는 국민 여론이 자리잡았다는 얘기다.
푸틴이 표방한 '강한 러시아' 슬로건은 적어도 국내 정치에는 통용되지 않을 것 같다. 푸틴 집권 시절 오일머니의 수혜를 받고 급성장한 중산층이 이제 반 푸틴 운동의 선봉에 선 것이 특히 부담이다. 푸틴도 시민사회의 자유화 요구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 푸틴은 ▦공권력 시스템의 개선 ▦공직사회 부패 척결 ▦탕평인사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2004년 폐지한 지방정부 수장 직선제의 부활을 검토하겠다는 대목에서도 정치개혁의 의지가 엿보인다.
지지율 회복과 개혁의 성공 여부는 푸틴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령 푸틴은 반정부 시위로 위기가 고조되자 옛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 세르게이 이바노프를 대통령 실장에 임명하는 등 측근 체제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전히 관리와 통제에 무게를 두는 국정운영 스타일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푸틴 당선의 수혜자로 올리가르흐(신흥재벌)가 꼽히는 점(CNN)도 그의 개혁 의지를 낮게 평가하는 이유이다. 모스크바타임스는 "야권의 조기총선 요구를 대담하게 수용하는 등 기존 정치시스템의 근간을 흔들 정도가 돼야 민심이 푸틴의 말에 귀 기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 푸틴의 3중 통치구조
제왕적 대통령(8년)과 상왕 총리(4년)를 합쳐 12년간 러시아 권력을 쥐고 흔든 블라디미르 푸틴은 그 동안 측근_행정가_외곽단체로 이어지는 견고한 3중 통치구조를 구축했다. 푸틴의 친정인 정보기관 출신 인사들이 권부 핵심을 차지하고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변호사ㆍ경제학자 그룹이 행정을 책임지며 ‘러시아의 푸사모(푸틴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해당하는 민간정치단체가 외곽에서 지원하는 구조다.
푸틴의 친위대 역할을 하는 군ㆍ정보부 출신 인사들은 ‘실로비키(Siloviki)’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들은 주로 국가보안위원회(KGB), 연방보안국(FSBㆍKGB의 후신), 연방마약유통통제국(FSKN)의 장교 출신인데 1990년대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 시절 권부에 진입한 이후 푸틴 집권기에 권력 핵심으로 떠올랐다. KGB를 거쳐 국방장관과 부총리를 지낸 뒤 대통령 행정실장 자리에 오른 세르게이 이바노프(59), 푸틴의 KGB 후배인 세르게이 나리슈킨(59) 하원(두마) 의장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푸틴과 지연으로 엮인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룹은 주로 내각에서 행정 실무를 책임지는데 푸틴 대신 4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47ㆍ변호사), 푸틴 집권기 내내 러시아 경제의 선장 역할을 맡은 알렉세이 쿠드린(52ㆍ경제학자) 전 재무장관이 여기에 속해 있다. 푸틴 1기 첫 경제통상부 장관을 지내고 현재 스베르은행 총재로 일하고 있는 게르만 그레프(48), 소치 동계올림픽 준비를 책임진 드미트리 코작(54) 부총리 역시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룹으로 분류된다.
60만명의 회원을 자랑하는 푸틴 지지 청년단체 나쉬(Nashi)도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친푸틴 시위를 계획하거나 반푸틴 시위를 방해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데 최근 푸틴 찬양 댓글을 달아 거액의 돈을 챙긴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반면 한때 푸틴 사단의 한 축을 형성했던 옐친 그룹 인사들은 차례로 권력 핵심층에서 물러나며 최근 퇴조를 보이고 있다. 옐친 그룹 핵심으로 분류됐던 미하일 카시야노프(55) 전 총리는 2004년 축출된 뒤 현재 반푸틴 세력의 일원으로 활동 중이다.
한편 푸틴이 5월 대통령에 취임하면 메드베데프 현 대통령과 자리를 맞바꿔 그를 총리에 기용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일각에서는 쿠드린 전 장관의 총리 선임을 점치기도 한다. 쿠드린은 지난해 9월 “메드베데프와 일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가 경질됐는데, 당시 꼭두각시 메드베데프를 확인사살이라도 하듯 “사직 여부를 푸틴 총리와 상의하겠다”고 말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 "경제 살린 구세주" "민주주의 뒷걸음"
블라디미르 푸틴(59)에게는 상반된 평가가 따라 다닌다. 러시아의 경제성장을 이끈 구세주라고도 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권위주의 지도자라고도 한다.
170㎝가 채 안 되는 작은 키가 말해주듯 어린 시절의 푸틴은 체구가 작아 괴롭힘을 많이 당했으며 집안 형편도 넉넉하지 못한 편이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그런 유년기가 그를 강한 '마초'로 키웠다고 분석한다.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을 거쳐 1991년부터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지방정부 관리로 일하던 그는 이후 KGB의 후신인 러시아연방보안국(FSB) 국장으로 근무하다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1999년 총리직에 오른다. 초고속 승진의 배경은 강한 추진력과 책임감이었다. BBC 방송은 부인과 두 딸 등 가족이 그를 워크홀릭이라고 부른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를 발탁한 옐친이 사망하면서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된 그는 2000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됨으로써 최고 권부에 올랐는데 이 역시 남다른 카리스마가 크게 어필한 덕분이다.
집권 이후 러시아가 연 7% 대의 눈부신 고속 성장을 거듭하자 인기도 덩달아 치솟았다. 강한 러시아를 갈구하던 국민들은 경제성장을 통해 러시아의 영화를 기대했다. 그는 국민의 그 같은 기대를 바탕으로 국정을 강력하게 이끌었는데 2002년 체첸 무장세력이 모스크바의 극장을 점령해 관람객 850여명을 인질로 잡자 곧바로 특수부대를 투입, 130여명을 숨지게 했는데도 최고의 지지를 받았다. 그는 유도와 오토바이 경주, 호랑이 사냥 등을 통해 개인적인 남성성을 마음껏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 추진력과 카리스마가 러시아의 부정부패와 민주주의 후퇴라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도 많다. 이번 대선 기간 반대 세력은 줄곧 그런 주장을 폈다.
이태무 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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