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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칠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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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칠조심

입력
2012.03.0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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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조심> —

내 마음이 조심하지 않는 바람에

내 기억은 종아리와 뺨과

팔과, 입술과, 눈에 온통 얼룩져 버렸다.

내가 너를

그 모든 성공과 실패보다 더 사랑한 것은,

너와 함께 있으면

누르스름한 흰 빛이 하얗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내 어둠 또한

친구야, 맹세하건대, 어떻게든 하얗게 되리,

헛소리보다도, 전등갓보다도

이마에 감은 흰 붕대보다도 더 하얗게!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닥터 지바고> 를 쓴 소설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러시아에서는 시인으로 더 유명해요.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아름다워서 미칠 것 같아요. 이 미칠 것 같은 맘이 없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러면 시를 안 썼을 테고 살기도 덜 벅찼을 테죠. 조심하지 않는 바람에 마음이 온통 시로 얼룩져버렸습니다. 얼마 전 연극하는 분들을 만났어요. 이 분들도 작가들만큼이나, 아니 더 가난하겠지요. 젊은 연출가 한 사람이 한 해가 시작되면 '올해는 또 어떻게 버티나'하는 맘이 든대요. 그렇지만 함께 있으면 누르스름한 흰 빛이 하얗게 되니까 나는 모든 성공과 실패보다도 사랑합니다. 시를, 연극을, 음악을, 그리고 가진 것 없이 내 영혼을 얼룩지게 했던 당신을. 그러니까 칠조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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